안성 미리내 성지를 지나 울퉁불퉁한 흙길을 조금 더 따라가다보면 뜻밖에 정갈하게 손질된 정원을 만나게 된다.

크고 작은 석조각들이 늘어서 있는 푸른 잔디밭 끝에는 웃는 얼굴이 조각된 정겨운 건물이 서있다.

중견 조각가 한진섭씨(44)의 작업장.

6년전 한씨가 손수 터를 닦고 건물을 올려 마련한 곳이다.

7일부터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6년만의 개인전을 앞두고 막바지 손질에 한창인 그가 반갑게 객을 맞는다.

"운이 좋았어요.

돌조각하는 사람들은 작업장으로 쓸만한 장소를 찾기가 힘든데 마침 여러가지 조건이 딱 들어맞더라구요.

그때만해도 땅값이 쌌으니까 마련했지 지금같으면 엄두도 못내겠지요"

힘들고 시끄럽고 먼지날리고...

흔히들 "조각의 3D"라고 부르는 게 돌조각이다.

수요조차 많지 않아 하려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

대학때부터 25년간 돌만을 쪼아온 한씨의 존재는 그만큼 크다.

"돌은 참 정직합니다.

한번 때리면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그만큼의 효과만 나거든요.

요령이나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미련하고 끈질기고 끈기있게 해야하는 만큼 성취감도 큽니다"

건물안에는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돌들이 다종다양한 질감과 색채를 뽐내며 모여있다.

분홍계열만 해도 수십가지다.

아스라한 연핑크로 물든 것이 있는가 하면 묽게 쑤어놓은 팥죽색이나 살짝 익힌 연어살같은 주홍빛도 있다.

여인의 속살보다도 뽀오얀 우윳빛으로 빛나는 놈은 "대리석의 왕자"라는 "스타투아리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나 비너스의 매끈한 몸매를 다듬어낸 눈부시게 새하얀 돌이 바로 그 스타투아리오란다.

"돌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돌과 대화가 가능해요.

돌의 성품을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신경질적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 끈적한 것 건조한 것 따뜻한 것도 있어요.

결도 다 틀리구요.

성품을 모르고 정을 댔다간 자칫 쩍쩍 갈라져 버리기 일쑤거든요"

한씨의 손끝에서 돌들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형태로 거듭난다.

모서리마다 부드럽게 둥글린 조각들에선 돌특유의 차가움대신 따스하고 인간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인체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미남 미녀도 팔등신도 아닌 흔히 보는 친근한 모습들이다.

정원에 놓은 동그란 의자는 가운데를 살짝 집어 엉덩이 양쪽을 편안하게 걸칠 수 있다.

품에 안고 싶을만큼 둥글둥글한 안락의자에는 몸이 쏙 안긴다.

"웃는 아이"는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미술시장 FIAC에서 97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사들이기도 했다.

최근 변승훈 김남용과 함께 작품으로 봉헌한 강원도 대화성당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작가의 이념이나 사상이나 철학등을 발견해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점이 한씨 작품의 큰 매력.

"조각을 한참 하다보면 테크닉을 버리게 돼요.

이런 걸 어떻게 쪼았을까 싶은 어려운 조각들은 하고 싶지 않아요.

누가 봐도 야 재미있다,친근하다 할 수 있는 조각에 관심이 갑니다"

한씨는 홍대 조소과와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한후 81년 이태리로 건너가 대리석의 본고장인 피에트라산타에서 카라라 국립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인사아트센터 개관 기념전으로 기획된 이번 "한진섭 조각전"은 그의 8번째 개인전.

10년간의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갖는 두번째 전시회로 인간을 주제로 한 돌조각 40여점을 전시한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한진섭이 도달한 세계는 호화스러움 대신에 질박함이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기교로 일궈낸 푸근함을 주는 작품들은 수더분한 이웃들의 초상"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25일까지.

(02)736-1020

<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