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철의 날 행사를 계기로 50년만에 세계 6위로 우뚝선 한국 철강산업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철강산업은 "산업의 쌀"인 철을 생산해 자동차 조선 전자 기계 건설 등 주력산업에 공급한다.

이런 점에서 철강산업은 생산,수출,고용 등 국가경제의 3각축을 떠받치는 1등 효자산업으로 불린다.

<>국가경제 기여도 철강산업은 99년 현재 GDP(국내총생산)의 2.0%(수출입을 포함한 GNP 기준으론 4.6%),제조업의 6% 비중을 차지했다.

수출의 5.0%,고용의 2.7%를 창출하는 국가기간산업이다.

정보통신 등 신산업분야의 고속성장으로 상대적으로 비중은 줄었으나 여전히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

우리나라 철강생산 능력은 지난 62년 14만8천t에서 99년 4천1백만t톤을 넘어 지난 30간 2백80배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 93년 이후 세계 6위의 철강생산국으로 우뚝서왔다.

한국 철강산업이 세계 철강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62년 0.04%에서 99년 5.2%로 증가했다.

<>한국철강산업 50년 지난 50년대는 철강 불모지였다.

해방전 일제에 의한 군수공업의 하나로 건설된 우리나라의 철강공장 대부분이 북한에 소재했었다.

해방후 국토의 분단과 함께 남한의 철강공업은 절망적인 상태였다.

남한에 있는 철강공장마저도 한국전쟁으로 파괴됐다.

1953년 휴전으로 철강업계가 복구를 시작했다.

삼화제철소가 전쟁으로 파괴된 총 8기의 소형 용광로중 3기를 보수해 1954년 6월 시험생산을 개시했다.

대한중공업공사(1948년 6월 조선이연(주) 인천공장을 모체로 발족,현 인천제철)가 지난 56년 11월에 강괴를 생산했다.

압연부문에선 56년 당시 동국제강 등 8개사가 전쟁중 발생한 고철을 녹여 연간 4만4천여t의 철강재를 만들었다.

철강산업은 60년대 태동기를 겪었다.

1962년 경제개발계획 추진으로 공업화가 촉진되면서 철강재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기존시설의 확충과 신규공장의 건설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전기로는 1963년에 부산제철소가 처음으로 12t급 1기를 설치,3만4천t의 설비능력을 보유했다.

철강산업은 70년대 도약기를 맞았다.

경제개발계획의 강력한 추진으로 철강재 수요가 급증했다.

정부는 1968년 4월에 포항종합제철(주)를 발족시키고 1970년 4월에 철소 건설공사에 들어갔다.

해방후 불모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1973년 7월 1백3만t 규모의 포항제철 1기설비의 준공과 함께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포철은 국내 철강수요의 지속적인 증강에 대응하기 위해 1985년부터 국내기술로 광양제철소 건설에 착수했다.

90년대 들어 한국 철강산업은 일관제철,전기로 및 특수강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1993년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선진철강국들을 제치고 세계 6위의 철강생산국으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과제 한국 철강산업은 일부 품목의 과잉설비문제 해소와 경영부실화 업체의 조기 정상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오관치 포스코경영연구소장은 "한국 철강업계는 선진 철강국에 비해 제품제조 기술에서 아직 열위에 있다"며 "미래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차세대 철강기술 개발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공급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에 대응해 환경친화적 산업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스틸하우스 철골조아파트 등 신수요를 창출할 과제도 안고 있다.

통상마찰 최소화를 위한 다각적인 활동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한 e비즈니스도 철강업계의 과제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