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대표적 재벌기업인 알스트롬사는 지난 1851년 설립이후 1백50년동안 친족경영을 해온 회사다.

이 회사는 2백여명으로 구성된 친족총회에서 선출된 가족위원회(5명)가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간"이 아닌 "전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사회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있다.

이 회사의 CEO이자 창업주인 안티 알스트롬의 5대손인 크리스터 알스트롬회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기본이지만 능력있는 가족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며 "만약 우리가 대다수의 파산기업들처럼 가족내의 분쟁이나 나쁜 수익구조를 갖고있다면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영입할 것"이라고 말한다.

알스트롬사는 가족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기위해 수많은 예비후계자들을 하여금 다른 기업에서 능력을 검증받도록하고 있다.

또 "알스트롬 가족의 가치및 정책"이라는 일종의 내부협약을 통해 최고경영자 승계에 관한 원칙을 명문화해놓았다.

이 회사의 사례는 후계구도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정해놓으면 세습경영도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평론가 조안 마그레타는 "미국만 하더라도 친족소유권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며 "포천 5백대기업중 3분의 1이상이 오너 친족 소유이거나 친족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에 비해 선진국에서 전문경영인의 비중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경영자의 능력을 주가로 평가하고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풍토와 맞물려있다.

전통적으로 강력한 금융력을 기반으로 한 앵글로색슨형 자본주의는 원활한 직접금융과 높은 투자수익률 달성을 기업경영의 최고 덕목으로 쳐왔다.

이를 위해 주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필요로 했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못하는 경영인은 외부 자본조달에 실패하거나 인수.합병의 표적이 됨으로써 "퇴출"을 면치못했다.

하지만 영미계 기업들이라고해서 오너를 완전히 배제하면서 오로지 전문경영인시스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포드 록펠러 듀폰등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역할분담을 통해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어떤 인물을 영입할 것인가,주주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등의 의사결정은 사실상 오너의 입김에 의해 좌우된다.

포드자동차의 대주주인 포드가문(지분8%)은 포드2세와 같은 걸출한 경영인을 배출해냈고 지금도 오너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듀폰도 전형적인 가족기업의 특성을 지녔지만 상황에 따라 재무전문가 영업전문가 엔지니어등을 최고경영자에 기용해왔다.

따라서 오너십을 배제하는 것만이 선진경영의 지름길은 아니며 오너십 자체가 경영불안을 야기한다는 논리도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재벌의 병폐로 지목되고있는 차입경영 상호지급보증 상호출자 문어발확장등은 모두 자원이 열악한 상황에서 자원의 전략적인 집중을 가능케한 한국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이같은 재벌체제 없이 한국이 고속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을지를 자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90년대초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2조원)를 사례로 들었다.

1억원씩 나눠 지원하면 2만개의 중소기업을 키울 수있는 돈이었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선택과 집중"을 위해 "형평과 안정"을 포기한 것은 "잘 된"일이었다는 설명이다.

또 로스토우(Rostow,W,W)의 5단계 경제성장론(전통사회-도약준비단계-도약단계-성숙단계-고도대중소비사회)을 한국상황에 대입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분석이다.

한 나라 경제가 도약단계를 거쳐 성숙단계에 들어가려면 국민소득에 대한 순투자비율이 10%이상으로 높아야하고 제조업부문의 높은 성장률이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경제가 성숙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 안목에서 과감한 승부를 걸수있는 오너 기업가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면,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탈공업화단계에 접어든지 오래다.

이 단계에서 기업최고경영자는 과감한 공장폐쇄와 해외이전을 통한 이윤극대화 실적을 올리는 "터미네이터"로서 평가받게 마련이다.

전국경제인 연합회 관계자는 "발전단계를 무시하고 한국이 지금 당장 영미식을 그대로 배끼는 것은 "넌센스""라면서 "특히,금융시장의 외부 규제장치가 미흡한 상황에선 전문경영인의 무사안일 책임회피같은 도덕적 해이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한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