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삼성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주식거래를 해오던 회사원 K씨(31).

그는 9일 오전만큼은 영화속의 주인공이었다.

몇년전 개봉된 "돈을 갖고 튀어라"라는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어이없는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날 아침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증권계좌를 확인하던 K씨는 자신의 눈에 선명하게 박히는 기다란 숫자의 행렬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1백65억원".

"재매수가능금액"란에 찍혀있는 숫자는 도저히 자신의 계좌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액수였다.

K씨의 실제 보유금액은 단돈 3만원.

3만원짜리 계좌가 1백65억원짜리로 둔갑한 셈이다.

재매수가능금액은 고객이 주식을 살 수 있는 최대가능금액을 나타내는 용어다.

즉 마음만 먹는다면 1백65억원어치의 주식을 당장 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금액은 증권사에서 차입가능한 미수금도 포함하는 수치이지만 K씨의 경우는 미수가 불가능한 증권저축계좌이므로 1백65억원 모두 전적으로 고객의 재산임을 의미한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코스닥 종목인 비테크놀러지 주식 11만주에 대해 "사자"주문을 내봤다.

주당 6만1천원에 주문을 냈으니까 총 66억원어치다.

더욱 아연케 하는 것은 이 주문이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는 사실.

겁이 덜컥 나 바로 취소주문을 내고난 뒤 가슴을 쓸어 내렸다.

거래하던 삼성증권 영업점을 포함해 여러 곳에 전화를 하고 2시간 정도 지난 뒤 자신의 계좌가 정정됐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끝내 듣지 못했다.

삼성증권 전산실측은 거래원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대답만 할 뿐 어떻게 해서 원장에 착오가 생겼는지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K씨는 "증권사에 알리지 않고 그냥 며칠 뒤 돈을 인출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쓴 웃음이 난다"며 "이번 일과 반대로 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트레이딩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