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3년간 경제고위간부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전문성을 갖춘 젊은 간부를 대거 등용, 경제회생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경제관료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 경제관료의 정점은 홍성남 내각총리다.

그는 지난 98년9월 김정일 시대의 첫 내각총리로 전격 발탁된 전문기술관료다.

29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체코 프라하 공대를 졸업했다.

54년 노동당 중공업부 지도원을 시작으로 경제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북한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경제계획의 총사령탑인 국가계획위원장을 맡는 등 북한권력 내부에서는 "경제해결사"로 통한다.

97년 2월에는 강성산 전 정무원총리를 대신해 총리대리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홍 내각총리는 57년 공작기계 1만대 생산과제를 제기한 김일성의 교시를 완수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96년 1월에는 정부특사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대북식량지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98년 중앙관료 교체 물결속에 부총리로 전격 발탁된 조창덕 부총리와 곽범기 부총리도 북한의 핵심 경제관료로 꼽힌다.

조창덕 부총리는 전형적인 기술관료 출신이다.

탄광노동자로 출발해 기업소 기사,직장장,기사장,지배인을 거쳐 정무원 부상으로 일했다.

69년 광업성 부상을 거쳐 광업위원회 위원장(76년),채취공업위원장(86년) 등을 역임했다.

경제 및 과학분야에서 관록을 쌓은 경제통이다.

곽범기 부총리도 북한의 50~60대 신진관료중 한 사람이다.

희천기계공장 분공장 지배인(83년) 등을 거쳤고 북한 경제대표단을 인솔,대외경제관계에도 깊이 관여해왔다.

국가계획위원회의 박남기 위원장은 당의 최고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중 한 사람이다.

28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김책공대와 레닌그라드 공과대학에서 수학한 통계전문가다.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72년 금속공업성 부상에 오르면서 테크노라트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일찌감치 김정일에게 충성,76년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에 기용된지 불과 2년만에 당중앙위 제2경제사업부부장으로 발탁되는 등 고속출세 가도를 달려왔다.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회 위원장(90~93년),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 등을 거쳤다.

90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서울을 방문,우리에게 낯익은 연형묵 전 총리도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관료중 한사람이다.

31년 함북 경원출생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체코 프라하 공대를 졸업했다.

실무중심의 전형적인 기술관료로 특히 중공업분야 전문가다.

지난 92년 12월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밀려나 한때 시련을 맞기도 했으나 98년초 김정일의 자강도 현지지도 이후 재부상하고 있다.

당시 자강도 지역의 자력갱생을 높이 평가받은 덕분에 "강계정신"이라는 경제선동 슬로건이 생기기도 했다.

이 공로로 김정일 총비서가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국방위원으로 선출돼 군수분야를 담당하는 실세로 자리잡았다.

향후 총리직 복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외에 안주탄광기업소 지배인을 하다 전기석탄공업상으로 발탁된 신태록,방직공업연합 총국장에서 경공업상으로 등용된 이연수,전화국 직원에서 출발해 체신상이 된 리금범 등도 떠오르는 북한의 신진경제관료들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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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림 ]

남북정상회담 기획특집(53~60면) 일부 기사중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일자가 13일이 아닌 12일로 잘못 명기됐기에 바로잡습니다.

정부 발표 이전에 기획특집을 사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이오니 독자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