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인 원종성(63)동양에레베이터 회장이 산문집 "빨간 우체통"(월간에세이,7천원)을 펴냈다.

90년대초 "향 싼 종이에선 향내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난다"(전2권)로 3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그는 이번 산문집에서도 따뜻한 필치로 삶의 향기를 전한다.

제목부터 그윽하고 안온하다.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에 동네 어귀의 빨간 우체통을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 속이 타고 타서 재가 될지언정 푸른 풀잎처럼 돋아나는 사랑"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워 쓴 편지 한 통을 들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망설이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그는 고백한다.

목련나무가 서 있던 우체국 풍경은 어느새 세월 저편으로 밀려나고 단발머리 소녀의 이름을 적어 강물에 띄우던 종이배도 그리움과 함께 흘러갔지만 아직 가슴에 별똥별과 고추장단지를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

강원도 둔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외할머니가 과자 사먹으라고 쥐어준 동전 한 닢을 깡총대다 잃어버린 뒤 해질 무렵 눈물이 그렁한 채 외가로 돌아오던 기억을 떠올리며 "몇 개의 기업을 경영하는 회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때 잃어버린 동전 한 닢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욕심 때문만은 아닐 게다"라고 적고 있다.

그가 꿈을 키우던 고향 등성이의 소나무 한그루에게 보낸 편지 구절도 애틋하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즐겁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향은 고단했던 삶의 편린들을 묻어둔 채,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곳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고향을 생각하면 늘 미안했습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의 글은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호수같다.

수필 "나의 자화상"이 지난해까지 10여년간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으니 글솜씨야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는 기업 경영자로서 눈코뜰새없이 바쁜 중에도 꼬박꼬박 원고를 쓰며 "황금같은 젊은 날을 오로지 기업과 문학에 함께 바친"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 상대와 대학원을 마친 뒤 작고 시인 한하운을 비롯 김옥길 전규태 오소백 씨등과 "공론 동인지"를 발행했고 78년부터 5년간은 "월간 수상"을 펴냈다.

그 때 돈으로 10억원이나 까먹으면서도 문학을 놓지 못한 것은 세상을 밝히는 글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87년에는 원장문화재단을 세우고 "월간 에세이"를 창간해 13년째 이어오고 있다.

발행부수 8만부.

한 은행에서 매월 4천5백부씩 사가고 군장병들에게도 인기도서 1위로 꼽힐 만큼 성공했다.

아파트 우편함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는 책이 바로 "월간 에세이"다.

가장 잊을 수 없는 독자 편지 한 통.

"딸 시집 보낼 때 1년간 읽었던 월간 에세이를 함 속에 넣어 보낸 친정어머니의 편지였습니다.

그때 시댁 식구들의 감동이 평생 거름으로 작용한다며 행복해했지요"

그는 자신의 글 뿐만 아니라 "월간 에세이"에 실릴 원고를 고를 때도 엄격하다.

유명 문인들의 글까지 퇴짜를 놓곤 한다.

기업에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치듯 책에서는 독자가 제일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원고 엄선 전략처럼 그는 경영이나 인생에서도 "뿌리의 단단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