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밀알'' 경협 성사 확인...북한 SW산업 의외로 발전 ]

평양 방문 이튿날인 14일 아침.

경제인들이 묵는 숙소인 주암산초대소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북녁산하의 공기가 시원하게 폐부에 들어왔다.

심호홉을 크게 한번 했다.

"통일에 보탬이 되는 밀알이 되겠다"며 출발하기 전 맹세했던 새벽 미사를 떠올렸다.

이날 인민학습당 만경대소년궁전을 둘러본 뒤 옥류관에서 냉면을 맛있게 먹고 "조선컴퓨터회사"를 방문했다.

북한의 컴퓨터 기술수준,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수준은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듯 했다.

안내원들은 "남한의 삼성이 북한과 공동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며 중국 베이징에 개발센터를 만들고 있다"며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북한측이 이처럼 모든 것을 개방, 샅샅이 보여준데 대해 우리 경제인들 감명을 받았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서로 주고받자는 자세로 보였다.

마지막 날인 15일 오전.

평양에서 50km 떨어진 닭공장 "동화협동농장"을 찾았다.

콤비나트 형태인 이 농장에선 옥수수나 콩을 재배하고 사료를 만들어 닭 오리 거위 돼지 등을 키우는 곳이었다.

특히 이 농장은 최신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닭사료를 컴퓨터에서 자동적으로 만들어 닭에 주면 알이 자동으로 부화돼 병아리로 커서 나오는 일관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경제인들은 현대화 설비를 구비한 닭농장을 보면서 북한이 농업개발에도 열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세 번이나 이 곳에 와서 현장 지도를 했을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김 위원장 얘기가 나온 김에 그를 평가하면 판단력이 빠르고 순발력이 돋보였다.

김 위원장은 유머를 구사하면서 회의를 리드해 나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식탁의 의자를 팔걸이가 있는 걸로 바꾸라고 지시하고 걸을 때도 김 대통령보다 2,3보 뒤에 서서 모실 정도로 예의가 바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북 경제인들이 14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경제분야 회의를 가진 것은 지금까지 실험적으로 진행돼온 남북경협이 본격적으로 물꼬를 트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의 성과로 꼽을 만하다.

우리 경제인들은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남북 경제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구성, 투자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필자도 92년 기본 합의에 따라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제도적으로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결제수단도입, 지적소유권 인정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대만 기업인의 투자유치를 위해 우대조치를 했듯이 북한의 남한 기업에 대한 우대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북측이 지난번에 개정한 외자유치법 내에서 남한기업은 우대조치에 빠져 있다고 설명하면서 나진 선봉 사업 추진이 잘 안되는 이유와 중국 심춘 경제특구가 잘되는 이유를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측에선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연) 정운업 회장, 박동근 조국통일 연구원 참사, 정명선 민족경제연합회 참사, 박세윤 조선컴퓨터 센터 총사장, 조현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당에서 결정하면 우리는 따른다"며 적극적인 수용 태도를 보였다.

방북 마지막날 오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남한 경제인들을 불러 술을 따르면서 "합시다"라고 말한 점에 비춰 경협확대를 위한 획기적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측 인사들과 유익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가 7천만 민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실질적으로 경제교류를 확대하자는데 의견을 일치시킨 만큼 미래는 낙관적이다.

전경련도 남북경제협력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재계의 대북중복투자를 조정하는 등 경협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