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평양방문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는 동안 정말 절망적인 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절망적인 순간이란 무엇이었을까.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그런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지난주말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황 수석은 "회담 둘째날 무려 4시간15분간의 회의는 정말 힘들었다. 그냥 넘어간게 하나도 없었다.
공동선언문 제목까지도 쉽게 합의를 본게 아니었다. 항의할건 항의하고 섭섭한건 섭섭하다고 말하다 보니 회담이 이런 쪽으로만 치우쳤다. 그러다 보니(결실도 없이) 그대로 (서울로)돌아가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합의문에 서명은 누가 할 것이냐를 놓고 김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하는게 옳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김 국방위원장은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사람은 김영남이라는 주장이었으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자 김 국방위원장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라는 문구를 넣고 장관들이 서명하면 어떻겠냐고 수정제의하기도 했다.

그것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자 그는 "전라도 고집 대단하십니다"며 직접서명을 수용했다"고 소개했다.

황 수석은 특히 합의문의 1항과 2항이 나오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자주적"이란 단어가 포함된 제1항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까.

"자주=미군철수"라는 등식의 시각에서는 그의 워싱턴행도 이것에 초첨이 맞춰져 있는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자주적"이란 표현이야말로 북한이 얻어낸 가장 큰 수확이었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물론 황 수석은 "제1항이 당사자 통일원칙을 언급하고 있지만 통일은 군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통일은 문화 경제체제 등 모든 분야를 통일해야 하는 긴 과정이다.

따라서 "자주"를 "군사적"인 문제만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황 수석이 설명하는 회담과정을 곱씹어보면 남북은 주고받는 게임을 했다고 볼수 있다.

"자주"라는 표현을 북한에 내주지않은 상태에선 김정일의 서명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란 유추도 가능하다.

자주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다.

다만 그건 현실적인 벽을 넘어야 가능하다.

"절망"과 "현실의 벽"은 그래서 비례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워싱턴 양봉진 특파원 http://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