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6세. 다케시타 전총리는 지난해 4월 노인성 척추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 줄곧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혼수상태에 빠진 뒤 숨을 거뒀다.
그는 자민당 주류의 맥을 잇고 있는 최대 파벌인 오부치파의 사실상 오너로 하시모토 류타로와 오부치 게이조 등 역대총리 선출에도 깊숙히 관여,일본 정계의 실력자로 군림해 왔다.
시마네 현의회 의원을 거쳐 58년 중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14선을 기록한 그는 87년 7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결별,자신의 계파를 출범시키고 그해 11월 총리에 취임했다.
89년 6월까지 1년반 가량 재임하는 동안 논란이 많았던 소비세를 도입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리크루트사의 헌금의혹사건으로 퇴진한 뒤에도 후임 내각의 탄생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는 인간관계를 원만히 처리하면서 현안을 다뤄가는 조정형 리더로 가장 "일본적인 정치가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관련,한때 다케시타 파벌에 속했던 오자와 이치로 현 자유당 당수는 "다나카 전총리가 피처형이라면 다케시타는 캐처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다케시타는 특히 지난 90년 한일의원연맹의 일본측 회장으로 취임,양국간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해왔으며 한국내에도 박태준 전총리 등 와세다대 동문을 중심으로 많은 인맥을 갖고 있다.
다케시타의 사망은 그의 애제자인 고 오부치 전총리파의 향후 진로는 물론 오부치파의 지지로 탄생한 모리 요시로정권의 앞날에도 미묘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