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엄두도 나지 않는 걸까.

의사들의 집단 휴폐업 이틀째인 21일 각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에 환자들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그러나 대학병원 의대 교수들의 느슨한 진료와 비상진료를 하고 있는 국 공립병원의 진료 누수로 환자와 가족들의 분노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서울시내 종합병원 들은 이날 일부 교수까지 나와 외래진료를 봤다.

그러나 신규 환자는 전혀 없었고 대부분 증세가 심각해 재진이 필요하거나 지병으로 약을 타러온 환자들 뿐이었다.

인턴 레지던트가 빠져나간 대학병원들은 교수들이 응급실 스태프로 일했지만 순발력과 체력이 떨어져 신속한 환자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틀째 응급실 근무에 나선 한양대병원의 한 교수(59)는 "20년전 전공의 기억을 더듬다보니 기억이 잘 안나는 부분도 있고 전공의들의 빈자리가 실감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학병원은 교수들이 연구실에서 대기하면서 응급콜이 올 때만 진료하는 바람에 그만큼 환자치료가 늦어지고 있다.

한양대병원에서는 이날 오전 5시께 진통을 느낀 산모 최모(29)씨가 찾아왔으나 영아용 인공호흡기가 모두 사용중이어서 상계백병원으로 옮기는 등 4명의 응급환자들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강남 성모병원 관계자는 "응급처치는 가능하지만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지속적인 치료를 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병원은 응급으로 실려온 맹장염 환자를 인근 중형병원으로 역송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서울잠실병원의 경우 20일 새벽부터 21일 오후 5시현재 영동세브란스병원 등에서 보낸 6명의 환자를 받았다.

또 교통사고 환자들을 주로 담당하는 방지거병원 대한병원 등 지역거점 병원에는 평소보다 2배가까이 많은 교통사고환자가 응급 후송된데다 어린이 및 노인 응급환자까지 몰려 응급실이 더욱 북새통을 떨었다.

<>국.공립병원 보건소=전공의 1백50여명이 빠져나간 국립의료원은 전문의만 진료를 실시,환자들의 불만을 샀다.

전체 환자수는 폐업이전 보다 40%가량 늘었으나 의료진 부족으로 대기시간은 2시간 이상 길어지고 있다.

병원측은 전일 비상근무하는 의사들의 체력이 달려 2~3일후면 정상진료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보훈병원의 응급실에는 현재 전문의 1명만이 상주하고 있으며 국립경찰병원도 전문의 2명만이 진료에 나서 정부의 비상진료체계는 사실상 붕괴됐다.

부산보훈병원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인 상태로 이송된 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해 물의를 빚었다.

20일 오후 10시쯤 부산시 사상구 감전동 축협 앞길에서 길을 건너던 차명옥(45.여)씨가 차에 치여 부산보훈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부산보훈병원측은 차씨에 대해 정밀진단도 하지 않은 채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차씨는 이곳에서 차량으로 20분이상 걸리는 부산의료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전국 19개 군 병원은 지난20일 4백46명을 진료한데 이어 21일에도 5백여명의 환자를 돌봤다.

각 군 병원은 군용 차량 40대와 봉고형 2대 등 앰뷸런스를 비상대기시키고 있다.

지난20일보다 한산한 가운데 예년보다는 10~30%가량 많은 환자들이 몰렸다.

서울 도봉구 보건소 약사 강성심(32.여)씨는 "지병으로 약을 타러오는 노인분이나 동네 소아과가 문을 닫아서 소아과 환자들이 특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약국 한방병원=감기 설사 장염 가벼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약국으로 향했다.

각 약국마다 평소보다 30%이상 많은 환자들이 몰렸다.

소아 고열감기환자와 식중독으로 인한 장염환자가 특히 많았다.

고혈압 당뇨병 등에 걸린 성인병 환자도 의약분업직전 약을 대량 구입하느라 북적였다.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7월부터 구입이 어렵게 되는 항생제및 스테로이드 연고류,케토톱같은 파스류,경구용 및 주사용 인슐린,고혈압약 등 만성질환 치료제 등은 재고가 거의 바닥났다.

의왕시 박영달 약사는 "이미 보름전부터 한사람이 10통씩 사가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방병원과 한의원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울 안암동 우신향한방병원의 경우 대학병원등에서 환자들이 옮겨왔다.

서울 신사동 자생한방병원과 성동구 성수2가 오당한방병원에도 지난20일부터 한의원 폐업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계속 걸려왔으며 평소보다 환자 수도 30% 가량 늘어났다.

반면 경희의료원이나 강남차한방병원의 경우 한방병원이 정상 운영되고 있으나 환자들이 양방병원과 같이 폐업을 하는 것으로 오인,오히려 환자수가 10%가량 줄었다.

<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