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 < 소설가 hannak2@hanmail.net >

몇해전 총선 합동연설회에서 한 후보가 외치길 "여러분 제가 요즘 뭐 먹고 사는 줄 아십니까. 밥인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의 열렬한 지지와 박수소리 먹고 삽니다"

과연 후보는 힘찬 박수를 받고 한껏 만족한 얼굴로 단상을 내려갔다.

회사근처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났을까.

세상 어른들은 무얼 먹고사나.

또 나는 뭘 먹고 살아왔나.

지금부터 삼십 몇년전,내가 갓 나온 송아지처럼 무럭무럭 김을 내며 태어났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 지지와 박수를 보내는 대신 섭섭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셨다.

화가 나서 병원에도 안 오신 무서운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오매불망 삼대독자 아들을 바라는 집안에 둘째 여자애로 나온 건 다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나도 언니가 태어났을 때처럼 환영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그후 나는 즉시 "공평한 사랑"의 쟁취를 위해 노력했는데 그중 90% 이상이 심술이었다.

엄마가 아끼는 비단실을 모조리 끊어 놓거나,아빠의 책들을 꺼내 마구 구겨 놓거나,되지도 않게 풍금을 시끄럽게 눌러대거나 하는 따위의 유치함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했다.

그리곤 어떻게 되었나.

어떻게 되긴.

나의 일기장은 "나는 미운 오리 새끼,언젠가 백조가 되어 날아가면 다들 놀라겠지,나는 외계에서 온 공주님,나의 부하가 나를 구하러 온다" 따위의 한심한 공상들로 가득 메워졌다.

그 일기장들은 곧잘 아이다운 눈물로 얼룩졌다.

그리곤?

그리곤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은 소박하고 건강한 사랑을 주고 받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오늘도 불룩한 산모들의 배는 화산처럼 폭발하고,태어난 아이들은 "밥 한 공기 추가"처럼 좀 더 사랑을 달라 조르고,저 좀 알아달라고 유치한 심술을 부리고,그리곤 어느날 훌쩍 어른이 된다.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선 놀라운 양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의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어른이 된다는 일은 총선 후보를 향해 보내는 지지자들의 응원과 박수처럼 고맙고 눈물겹다.

아니면 오랜 가뭄 끝의 단비처럼 놀랍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한 공기 밥이나,가뭄 끝에 단비나,응원이나 박수가 돼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한 공기 점심밥 만한 사랑을 먹고 지내겠다.

얼마나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