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상화

최형식은 황무석이 시키는 대로 그곳에서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헤드라이트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두어 모금 깊숙이 빨았다.

자신이 46년 인생 동안 가장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았다.

노동운동에 연관되어 형사에 쫓기기도 하고 감옥에 드나들면서 험악한 경험을 숱하게 했지만 그것 모두는 지금 그가 처한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간 "처분하려고?"라는 황무석의 말이 떠올랐다.

그제서야 그 말이 시신 암매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는 알아챘다.

꼼짝없이 그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고,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의 벨이 다시 울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식아,내 말 잘 들어"

황무석이 말을 끝낸 후 잠깐 동안 뜸을 들였다.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지금 당장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고양 경찰서로 가. 그리고 자수를 해..."

최형식은 멍한 상태여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형식아,듣고 있지?"
"...네"

"경찰서에 가서 사실대로 얘기해.스위스그랜드 호텔 주차장에서 교통사고로 이정숙을 치었고 급한 마음에 병원으로 데려가던 중 이정숙이 숨을 거두었다고... 절대로 내 얘기는 하면 안 돼.스위스그랜드 호텔에 간 딴 이유를 생각해둬.그리고...벽제에 간 이유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그곳에 가게 되었다고...절대로 암매장을 생각했었다고 얘기하면 안 돼..."

"암매장을... 생각한 적은... 없어요"

최형식이 더듬거렸다.

"그럼 왜 거기에 갔어?"

"아내와 의논하고 싶어서요"

"뭐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사실대로 그렇게 얘기해.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죽은 아내와 의논하고 싶어서였다고"

"저는 그럼 어떻게 되지요?"

"단순한 자동차 사고에 의한 과실치사죄로 기소될 거야"

"그럴 경우 형은 어떻게 돼요?"

"기껏 해야 5년 형이 내릴 거야...좋은 변호사를 쓰면 감형이 될 거고.내가 뒤에서 최선을 다할게.내 전재산을 다 쓰더라도,아니 빚을 내서라도 형식이를 도울 수 있어!"

"아저씨 말씀은 고맙긴 하지만 지금 자수할 수는 없어요"

"왜?"

"아버지를 만나봬야 해요"

최형식이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버지가 이북에 살아 계셔요. 중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요"

"내가 대신 만날 수 있어"

"그건 안 돼요"

"형식아,지금 일이 얼마나 심각한 줄 알아?잘못하면 평생을 감옥에서 썩게 돼"

"생각해볼게요"

"생각할 시간이 없어..."

최형식이 황무석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