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98) 제1부 : 1997년 가을 <9> '추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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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상화
최형식은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데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는 차를 출발하면서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형식아,전화 끊지 말고 내 말 잘 들어.형식이의 생사가 달린 문제야.지금 당장 자수하지 않으면 살인자가 되는 거야"
"저는 이미 살인자가 되었어요"
"그렇잖아.누구나 운전하다가 사고낼 수 있어.단순한 과실치사야.만약 자수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 고의 살인으로 사형감이야"
황무석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을 당하든 감옥에 가든 상관없어요.
이제 제 인생은 끝났어요"
최형식이 울먹이며 말했다.
"진정해.나하고 당장 만나서 얘기해.신촌 근처에서 만나기로 해.지금 즉시 떠날테니 서로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하도록 해"
황무석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최형식은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아내의 무덤에 꼭 가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저 세상에 있는 아내가 도움을 줄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노면 때문에 요동이 심한 차체에 자신의 몸을 맡기면서 그는 자신의 46년 간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홀어머니 밑에서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고향 근처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한 뒤 서울로 와 선반공으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며 청년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자신의 노력으로 부양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다,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상념에 빠져들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유명을 달리한,같은 공단내 가발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하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1978년 한겨울 어느 날 미팅에서 아내를 만나 왠지 모를 어색함과 함께 자신의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랑인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그때 그는 사랑을 표현할 용기를 내기에는 너무나 겸손했고 방법을 알기에는 너무나 순진했었다.
그때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이데올로기는 분명 자신에게서 직업에 대한 부끄러움을 없애주었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때부터 직업에 자긍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작업장은 이데올로기의 투쟁현장이 되었었다.
그러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최형식이 모는 차는 커다란 돌무더기를 지나면서 높이 솟았다가 땅에 푹 떨어졌다.
그 바람에 그의 머리가 차 천장에 심하게 부딪혔다.
그는 너무나 큰 충격에 놀라 잠시 세웠다.
목뼈를 다치지 않았나 싶어 목을 돌려보았으나 다행히 괜찮은 것 같았다.
그 순간 뒷좌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뒷좌석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정숙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둘러보았더니 시신은 뒷좌석 밑에 엎어져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환각인지 모르나 달빛에 비친 이정숙의 시신이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공포에 질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리는 듯했다.
최형식은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데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는 차를 출발하면서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형식아,전화 끊지 말고 내 말 잘 들어.형식이의 생사가 달린 문제야.지금 당장 자수하지 않으면 살인자가 되는 거야"
"저는 이미 살인자가 되었어요"
"그렇잖아.누구나 운전하다가 사고낼 수 있어.단순한 과실치사야.만약 자수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 고의 살인으로 사형감이야"
황무석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을 당하든 감옥에 가든 상관없어요.
이제 제 인생은 끝났어요"
최형식이 울먹이며 말했다.
"진정해.나하고 당장 만나서 얘기해.신촌 근처에서 만나기로 해.지금 즉시 떠날테니 서로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하도록 해"
황무석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최형식은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아내의 무덤에 꼭 가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저 세상에 있는 아내가 도움을 줄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노면 때문에 요동이 심한 차체에 자신의 몸을 맡기면서 그는 자신의 46년 간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홀어머니 밑에서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고향 근처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한 뒤 서울로 와 선반공으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며 청년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자신의 노력으로 부양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다,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상념에 빠져들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유명을 달리한,같은 공단내 가발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하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1978년 한겨울 어느 날 미팅에서 아내를 만나 왠지 모를 어색함과 함께 자신의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랑인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그때 그는 사랑을 표현할 용기를 내기에는 너무나 겸손했고 방법을 알기에는 너무나 순진했었다.
그때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이데올로기는 분명 자신에게서 직업에 대한 부끄러움을 없애주었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때부터 직업에 자긍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작업장은 이데올로기의 투쟁현장이 되었었다.
그러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최형식이 모는 차는 커다란 돌무더기를 지나면서 높이 솟았다가 땅에 푹 떨어졌다.
그 바람에 그의 머리가 차 천장에 심하게 부딪혔다.
그는 너무나 큰 충격에 놀라 잠시 세웠다.
목뼈를 다치지 않았나 싶어 목을 돌려보았으나 다행히 괜찮은 것 같았다.
그 순간 뒷좌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뒷좌석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정숙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둘러보았더니 시신은 뒷좌석 밑에 엎어져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환각인지 모르나 달빛에 비친 이정숙의 시신이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공포에 질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