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거는 기대는 자못 컸었다.

헌정사상 첫 인사청문회인데다 고위 공직자의 자질이 공개적으로 평가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하는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청문회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면서 야당의 일방적 흠집내기와 여당의 증인 보호성 질의가 주를 이뤄 고위공직자의 업무수행 능력과 자질,도덕성 검증이라는 청문회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봉"을 기대했던 야당 의원들은 의욕만 앞선 나머지 경험 부족으로 "솜방망이" 질문을 던졌고 여당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이 총리서리를 편들었다.

당사자인 이 총리서리 역시 5공화국에서 부터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의 관록(?)을 발휘,노회하게 질문을 이리저리 피해갔다.

식상한 질의와 답변이 되풀이되자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하나둘씩 TV앞을 떠났다.

시청률이 예상을 훨씬 밑돌자 방송사들은 청문회 첫날 생중계를 서둘러 중단했고 27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서는 "아무런 영양가 없는 청문회에 방송 4사가 총출동 할 필요가 있는건가"라며 "전파낭비"를 꼬집기도 했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총리서리의 말바꾸기와 정치적 변신에 대해 의원들이 집중 추궁,"죄송하다"는 공개적 사과를 얻어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에 쐐기를 박았다.

또 이 총리서리 부인의 위장전입을 시인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틀간의 청문회가 끝났지만 총리서리의 철학이나 통일관 경제관 등 업무수행 능력과 관련된 사항을 검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질의의 방향과 수위를 조정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한 이유이다.

인사청문회가 활성화돼 있는 미국의 경우,임명동의안이 투표에 부쳐졌을 때 자유투표권이 주어지는 등 의원들이 당론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청문회에 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취지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청문회는 너무나 어설프게 막을 내렸다.

의원들의 자질론이 16대에도 또 다시 거론되는 불행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김미리 정치부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