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국제표준화기구)인증이 새 천년을 맞아 급격한 변화의 바람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1994년 제정된 ISO9000(품질보증시스템)시리즈가 새로운 규격으로 전면 개정돼 내년부터 시행된다.

ISO인증을 처음 받으려는 업체는 물론 인증기관과 이미 인증을 취득한 업체도 새로운 규격에 따라 다시 인증을 따야 한다.

또 자동차 보건안전 항공 통신 등 각 분야별로 독자적인 국제 표준규격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들 분야별 인증규격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ISO인증이 단기간에 급증하면서 인증기관의 난립,부실 심사와 인증서 남발,특정 업종의 인증 편중현상 등 적잖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증 분야도 제조업 위주에서 유통 공공행정 금융 등 서비스산업으로 확산돼 이에 대한 세부 규격과 심사기준 정립도 시급한 상황이다.

이제는 ISO인증 분야에도 양적 성장보다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난 94년 ISO인증이 국내에 도입된 이래 인증 취득업체는 6년여만에 1만3천여개사를 넘어섰다.

올해 4월말까지 ISO9000시리즈 인증업체는 1만2천6백99개사,ISO14001(환경경영시스템) 인증업체는 3백74개사에 달했다.

이처럼 인증업체가 짧은 기간에 급증한 것은 ISO인증을 따면 각종 혜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ISO인증은 품질(9000)과 환경(14000) 분야에서 기본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ISO인증서는 무역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표준 ID카드"로 인식되고 있다.

또 국내에선 공장실사 일부 면제,기술비용 세액공제,정부 입찰과 금융기관 기술신용평가시의 가산점 부여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과도한 우대제도는 오히려 국내 ISO인증의 부실화를 부추긴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다.

ISO규격을 통해 기업경영을 혁신하기보다는 혜택만을 기대하며 초단기 인증취득에 열을 올린 탓이다.

특히 공사입찰시의 가산점에 눈먼 건설업체들이 앞다퉈 인증취득을 추진하면서 ISO9000 전체 인증건수의 42.0%(5천3백30건)가 건설업종에 편중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컨설턴트와 심사원,인증기관이 결탁해 1개월안에 인증서를 내주는 초단기 부실인증도 적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ISO 시스템이 제대로 뿌리내리는 지를 1년 정도 지켜본 후 인증서를 내주는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따라서 ISO인증에 관련한 우대제도를 줄이고 인증업체에 대한 사후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각 분야에서 새로 나타나는 인증규격도 무역장벽의 성격이 짙은 만큼 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할 때다.

미국의 3대 자동차메이커(빅3)인 GM 이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부품업체의 품질규격으로 제정한 QS9000이 대표적이다.

이 인증서를 따지 못하면 빅3에 납품하는 길이 막히게 된다.

QS9000은 지난 97년부터 국내에 도입됐지만 인증취득 업체는 3백여개사에 불과하다.

또 유럽과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자체적인 품질규격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자동차 품질시스템 인증에 대한 연구와 준비가 절실하다.

산업현장의 잠재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보건경영시스템(OHSMS)도 국제규격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ISO에선 표준화를 포기했지만 ILO(국제노동기구)를 중심으로 규격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영국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선 이미 인증을 시작했다.

전세계 주요 통신사업자와 장비업체의 협의체인 퀘스트포럼은 TL9000(통신분야의 국제 표준규격)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에선 인증기관을 지정업무를 시작했다.

항공분야의 AS9000,선진국의 후진국 노동력 착취를 막기 위해 미국 주도로 작업중인 SA8000이 새로운 인증규격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정보관리(IM)와 금융,리스크매니지먼트(RM)분야에서도 국제규격화가 추진되고 있다.

또 ISO9000시리즈 2000년판이 올해안에 공포돼 내년 2월께부터 전세계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ISO인증기관과 기존 인증취득 업체도 오는 2003년까지 새로운 규격에 맞춰 인증을 경신해야 한다.

2000년판은 품질시스템과 환경시스템을 통합하고 기존 규격의 20개 요구사항을 경영책임 자원관리 제품실현 등 5개 부문으로 포괄 규정하고 있다.

경영자 책임이 대폭 강화되고 자원관리 제품공정과 품질시스템 개선에 대한 요구수준도 높아진다.

제조업의 생산과정에 국한된 공정 개념이 영업 설계 구매 생산 설치 부가서비스 등 사업프로세스로 확대돼 서비스와 공공행정분야에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규격이 전체적으로 까다로워져 이제부터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품질환경인정협회(KAB)의 정해진 전무는 "ISO인증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업경영에 필수적인 인프라스트럭처"라며 "인증취득 기업과 인증기관,컨설팅기관이 모두 ISO규격의 근본 취지를 새겨보고 새로운 인증환경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