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금융기관은 고리대금에 가까운 높은 금리를 주고 외자를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해당기관들은 나름대로 필요에 의해 외자를 조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책당국도 "외자가 선"이라는 선입견에 젖어 다른 분야와는 달리 감독이 소홀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자도입에 성공한 기관들은 무슨 "큰 일"이라도 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사회적으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 대목에 있어 정책당국과 해당기관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중요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최근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외자조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단계에 놓여 있다.
자체 신용으로는 국제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다.
그만큼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높은 가산금리를 부담해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자조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조정국면을 보이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최근처럼 투자가들의 자금을 기금형태로 운용하는 시대엔 수익률 보전차원에서 외국 금융기관들과 기금들이 개도국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환율이 1천1백원대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외국투자가들에게는 "일방적인 투자기회( one-way bet )"를 제공해 주고 있다.
동시에 국내기관들도 환 위험에 따른 부담없이 외자조달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외자도입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해당기관들은 자금난을 해결한다든가,국제결제은행( BIS )비율을 맞출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문제는 최근과 같은 외자도입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측면이 커진다는 점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 전반의 "거품화"촉진 문제다.
무분별한 외자도입은 주가를 비롯한 자산가치의 상승으로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wealth effect ).그 결과 일부 "가진 계층"을 중심으로 소비를 조장하고 경상수지를 악화시킨다.
둘째는 경제정책의 유효성과 독립성을 떨어뜨려 결국은 무력화시킨다.
최근처럼 대내외 주체간에 역차별이 심한 상태에서는 외국자본과 외국기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같은 정책이라도 과거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처럼 동조화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환율,금리와 같은 가격변수가 더 이상 우리 경제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 못되고 있다.
정책당국도 외자유입에 따른 원화 절상과 경상수지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늘어난 통화를 흡수( sterilized intervention )하다 보면 독립성까지 떨어진다.
셋째 국부유출과 새로운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단적인 예로 최근 일부 시중은행들의 외자조달 금리는 13%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들 기관들의 평균 대출금리가 8%임을 감안할 때 조달된 외자로 운영하면 할수록 5%포인트 정도의 역마진이 발생한다.
물론 이런 역마진은 시간이 갈수록 경영상의 압박과 추가 부실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이런 부실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귀착되는 또다른 형태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각자의 여건에 맞는 외자조달상의 위치를 누려야 한다.
정책당국도 "외자가 무조건 선"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무분별한 외자도입은 과감하게 규제해야 한다.
그래야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촉진되며 정책당국도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