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 한국외대 교수 / 과학사 >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는 체첸병사 가운데 젊은 여성 둘이 폭약을 실은 트럭을 러시아 병영으로 몰고 들어가 러시아 군사 몇명을 죽였다.

22살의 젊음을 독립이니 민족이니 하는 이상을 위해 스스로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어 산화한 젊은이에게 뭐라 할말을 잃는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는 비슷한 민족문제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제 "민족주의"는 지구상에서 서서히 물러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먼저 국적만 생각해 봐도 세상은 크게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양들의 침묵"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국의 앤서니 홉킨스(62)가 지난 4월 미국 시민이 됐다.

8년전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에게 수여한 "경"( Sir )이란 귀족 칭호를 그대로 가진채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인이 될 것을 선서했다.

영국 언론은 "홉킨스:양키가 된 배신자"란 제목으로 그의 미국 시민권 획득을 전했다지만 그리 큰 반응은 없는 모양이다.

같은 4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을 읽다가 "한국의 여류 초전돌파-세계 바둑선수권"이란 기사 제목에 눈을 번쩍 뜨였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 보니 "한국의 여류"라는 그 사람은 "한국인"선수가 아니라 중국인 여류 루이 나이웨이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그런 제목을 달았던 것이다.

그 기사를 더 따라가면 제13회 후지쓰배 바둑대회에서 2회전에 오른 선수들은 한국 6명,중국과 일본이 각 5명씩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이름 다음에는 괄호속에 나라 이름이 적혀있는데, 루이 나이웨이는 한국으로 표시됐고,한국인인 조치훈과 조선진은 일본이라 밝혀져 있다.

부정선거를 했다해서 국제적으로 말썽이 많은 페루의 후지모리는 일본인 이민 후손이고,그와 대결중인 톨레도의 부인은 벨기에 출신 미국 여성이다.

미얀마의 전설적 애국 독립투사 아웅산의 딸이며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1946~)여사도 국제적 배경을 갖고 있다.

오늘날 국제결혼이야 흔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국적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이중국적 정도는 약과가 될 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국적에 대해 꽉 막힌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단일민족"의 전통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든다.

"단일민족"을 강조하고,"민족주의"를 붙잡고 버티는 일이 세계화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역사에 민족의식이 생긴 것은 17세기부터의 일이다.

체첸의 여전사 기사를 읽은 날 필자는 과학사시간에 갈릴레오를 강의했는데,그는 1609년 "별에서 온 사자"라는 글을 라틴어로 썼지만,1632년 "두가지 세계상에 관한 대화"는 이탈리아어로 썼다.

그보다 3세기 전에 이미 단테는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썼지만,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뉴튼은 만유인력의 원리를 설명한 그의 대표작 "프린키피아(1687)"는 라틴어로 썼지만,1703년의"광학"은 영어로 썼다.

간단한 예를 들어 유럽에서의 민족의식 성장을 살피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민족의식이 차츰 자라서 19세기에는 아주 강력한 민족주의가 되고 그것이 세계를 주름잡은 막강한 힘이 되었음은 이미 잘 아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국적도 마구 섞이고,민족도 실질적인 잡탕이 되어 가는 인터넷시대에 "민족주의"란 차츰 뒷방 신세로 바뀌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와 함께 국적이란 개념도 차츰 시들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고...아마 이제 막 스포츠나 음악,연예 등의 국제 무대에서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한국 젊은이들도 세금만 과하다고 느끼면 언제 국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세계화 내지 국제화가 맹렬하게 진행되면서 국적이 다른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늘어날 것도 분명하다.

이미 세상은 "국가"니 "민족"이니를 갖고 갈라서기 하던 19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리도 융통성있는 유연한 태도를 길러야 할 때란 생각이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