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용 < 세종대 경제학 / 석좌교수 >

우리경제는 IMF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 지표상으론 별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걱정을 해도 정책 책임자들은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니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장담하다 끝내 국가부도사태를 당했다.

최근에도 겉으로 나타나는 지표들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금융부문과 기업부문의 감추어졌던 부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어 또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인 9백억 달러나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 97년의 불행했던 사태는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각종 개혁을 시작한지 2년반이 지난 오늘에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부실은 계속 드러나고,공적자금의 투입액은 천문학적 숫자로 늘고 있어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사회 각 부문에서의 비효율성 또는 부실의 원인은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라고 지적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해이란 "개인이 당장의 편익을 좇아 행동함으로써 장기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공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정부가 해결해 주겠지"하는 생각에서 공기업의 운영을 방만하게 하고 업무를 등한시 하는 것,심지어 민간기업에서도 "설마 우리같은 대기업을 부도처리하겠는가"하는 "믿음"에서 수익성보다는 덩치만 키우는 행위,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부실하게 건설공사를 하다 당한 각종 대형사고들이 대표적인 도덕적 해이다.

이렇듯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해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채찍과 당근"이다.

즉 나태해지거나 불법이 드러나면 엄한 벌을 주고,잘하는 사람에겐 충분한 상을 주라는 것이다.

성실한 공직자나 공기업 경영자들 그리고 민간기업의 대리경영인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 부정부패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해 주라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찾아내 벌을 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감사기능을 강화해서 부조리를 찾으려 해도 감시비용만 늘어날 뿐 모든 도덕적 해이를 찾아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채찍도 쓰지만 상을 강화하여 경제주체들의 개인적인 이득과 집단의 이득이 일치하도록 만들어 이 문제를 최소화한다.

수억 달러의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가 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공무원임용을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보수체계로 과연 전문가들을 유치할 수 있겠는지 의심스럽다.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경영을 맡고 있는 경영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주인(오너)이나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하에서는 대리경영인들이 대다수 주주들의 이득보다,경영권을 전횡하는 총수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는 것이 자리를 보전하는 길이다.

따라서 회사의 수익성이나 건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먼저 무엇이 고쳐져야 하는가는 명백하다.

우리 사회에는 "평등사상"이 너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말로는 자본주의체제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나눠먹기"로 귀결되어야만 말이 없다.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을 거부하는 실정이다.

사회주의체제가 왜 망하고 말았는가.

업적에 관계없이 나눠먹다 보니 다 같이 망한 것이다.

평등사상은 "이상"으로써는 고귀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평등사상만을 고집하다간 다 같이 망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형평성"문제는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조직의 운영은 효율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개혁의 우선 과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평등사상의 허구성을 인식시키고 나아가 업적에 따라 충분한 보수가 결정되도록 하여 공무원 정치인 경영인 등 모든 대리인들에게 그들 개인의 이득이 그들이 속한 조직,나아가 국가의 이득과 일치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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