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 소설가 >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집안을 둘러볼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즈음의 삶이 한 그릇에 담기는 음식처럼 한 눈에 잡힌다.

그 모습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익숙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낯설고 불편하기도 하다.

마당에 계절 꽃을 가꾸던 주택에서 살다가 일산의 아파트로 옮겨와 산 지 햇수로 칠년 째다.

나에게 집이란 대문이 있고,대문께에서부터 식구의 냄새를 알아보고 달려나와 꼬리치며 반기는 멍멍이가 있고,또 언제라도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구수한 장국과 김치가 내장되어 있는 그런 소소한 곳이었다.

그 집은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주인을 닮아 정겹고,오래될수록 새 빛이 솟아나는,돌이켜보면 젖과 꿀이 가득한 동방의 낙원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살림을 꾸리면서는 내 아이에게 집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태어나면서 새도시에 살아온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나,타지 여행으로 집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할 때,집이란 곧 상자곽 같은 아파트이고,그 시멘트 건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구획 배치된 새도시에 친근감을 느낀다.

주변에 놀이 시설이 잘 가꾸어져 있어도 아파트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놀이터보다는 컴퓨터를,모래보다는 레고를 선호한다.

풀에,들에,바다에,하늘에 한없는 동경과 위안을 구하던 나와는 달라도 아주 다른 종자인 것이다.

지난해 갖가지 집들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정발동산 아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버릇 하나가 생겼다.

저녁이면,특히 요즘처럼 붉은 노을이 호수 저쪽 서편 하늘을 물들이는 여름 저녁이면,나는 부엌창으로 들어오는 내 유년의 집으로 이어지던 길 어딘가에서 마주쳤을 것만 같은 고즈넉한 전망에 밥짓던 손을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

하나같이 다른 창문들이며,지붕들,울타리들,그 안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내가 오래 전에 떠나온 집,아니 아직 찾아주지 못한 내 아이의 집이 있지 않을까 더듬어본다.

저녁 밥은 더디면서 부엌창을 떠나지 못하는 어미의 마음을 아이가 알 턱이 없다.

더욱이 한두살 어린애도 아닌데 걸핏하면 자신을 번쩍 안고서 부엌창으로 향하는 어미의 꿍꿍잇속을.

언제쯤 나는 내 엄마처럼 나를 닮은 집을 갖게 되려나?

꿈만으로도 사치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