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 무덤을 파먹었지/내가 그곳을 열어보았지/너무 깊은데 당신이 박혀/그 추억을 파먹는데 꼬박/천년이 흘렀다"

짤막한 시의 제목은 "경주".

부제는 "느티나무 무덤위에서 죽다"이다.

시인 이윤학씨가 시집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문학과 지성사)에 이어 산문집 "거울을 둘러싼 슬픔"(문학동네)를 펴냈다.

서로의 여백을 채워주는 두 책은 암수딴몸의 은행나무 한쌍같다.

시인은 "이앙기가 빠트리고 간 자리에 모를 심듯"산문을 썼다고 고백한다.

"몸을 살찌우는데 바쳐진/기린의 머리여/장대의 정신이여/영원한 몸의 볼모여/너는 양껏 목덜미를 늘여/끊임없이 떠나가고 있는가/누가 자신의 모습으로/다시 태어나길 원하겠는가"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이 생엔 반벙어리 소년의 영상이 겹쳐진다.

말더듬이 남자애는 이다음에 피아노가 되고 싶다는 꼬마 여자아이와 소꿉놀이를 한다.

"네가 무슨 나무냐.피아노가 되게"

소년은 빨간 돌가루를 넣어 만든 환타를 아이와 나눠마신다.

뱃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주는 치약도 먹는다.

소년과 꼬마는 나란히 배탈이 난다.

"어느날 사람들이 둠벙에 빠진 여자애를 건져왔다. 벌써 죽었다고 했다. 어른들이 지게를 지고 공동묘지로 갔다. 별들이 유리조각으로 변해 눈을 찔러댔다. 누가 좀 와서 불이라도 밝히고 내 몫의 죄를 파갔으면..."

산문집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시쓰며 살아가는 현재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인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읽고 삶은 어떻게든 견디어야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회상이다.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