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수록 나는 텅비어간다..남진우 세번째 시집 '타오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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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씨(40)가 세번째 시집 "타오르는 책"(문학과 지성사)을 펴냈다.
시집 맨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시 제목은 "나그네는 길에서 쉬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시는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란 구절로 끝난다.
나그네는 길에서 쉰다는 것인가 쉬지 않는다는 것인가.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표제작을 꼼꼼히 읽어야한다.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재가 되어버리는 책을/행간을 따라 번져 불이 먹어 치우는 글자들/.../그 불속에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식어버린 죽은 말로 가득찬 감옥에 갇혀/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현장비평가 남진우씨의 고백은 "책을 읽을수록 나는 텅 비어간다"는 것이다.
"사각의 관"속에서 죽은 자의 망령과 만나는데 지쳤다는 이야기.
"아무리 먹어치워도 줄어들지 않는 글자의 산"앞에서 절망한 사람은 남씨가 처음이 아니다.
불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동서고금의 현자들은 세상의 모든 텍스트가 동어반복이라고 주장한다.
세계라는 도서관앞에서 익사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시인은 "문학에 실존을 건"사람이다.
그는 "어느날 불현듯 그를 찾아줄 미지의 언어"를 여전히 기다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공포이지만 존재를 불안하게 하는 "진짜"공포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재 속의 불씨"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모래 구름을 상상했다/물방울 대신 지상에 모래를 뿌리고 가는 구름을/.../모래비가 내린다/지금 이순간/내 혀와 입술에 와닿는 이 꺼끌꺼끌하고 단단한 빗방울/.../모래비가 내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끝내 목위로 차오르며 나를 덮는다/아,나는 이렇게 모래속에서 지워져간다"(모래 구름 아래서 중)
모래비가 세상을 뒤덮고 책의 불길을 잠재워도 상관없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으니 천년뒤 한 고고학자에 의해 모래 도시가 발굴될때 매장된 자들은 모래를 털고 일어나 웃으며 손내밀 것이다.
시인은 오늘 "쓸쓸히 저무는 하루를 등지고 말없이 비틀거리며 걸을"뿐이다.
겨울 저녁의 분위기가 전편을 지배하는 이번 시집은 죽음과 허무를 배면에 깔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는 발문에서 "중세적 이미지가 시적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달팽이처럼 기어갈수 밖에 없는 우주적 슴픔은 청년 신비주의자의 비애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
시집 맨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시 제목은 "나그네는 길에서 쉬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시는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란 구절로 끝난다.
나그네는 길에서 쉰다는 것인가 쉬지 않는다는 것인가.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표제작을 꼼꼼히 읽어야한다.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재가 되어버리는 책을/행간을 따라 번져 불이 먹어 치우는 글자들/.../그 불속에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식어버린 죽은 말로 가득찬 감옥에 갇혀/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현장비평가 남진우씨의 고백은 "책을 읽을수록 나는 텅 비어간다"는 것이다.
"사각의 관"속에서 죽은 자의 망령과 만나는데 지쳤다는 이야기.
"아무리 먹어치워도 줄어들지 않는 글자의 산"앞에서 절망한 사람은 남씨가 처음이 아니다.
불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동서고금의 현자들은 세상의 모든 텍스트가 동어반복이라고 주장한다.
세계라는 도서관앞에서 익사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시인은 "문학에 실존을 건"사람이다.
그는 "어느날 불현듯 그를 찾아줄 미지의 언어"를 여전히 기다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공포이지만 존재를 불안하게 하는 "진짜"공포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재 속의 불씨"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모래 구름을 상상했다/물방울 대신 지상에 모래를 뿌리고 가는 구름을/.../모래비가 내린다/지금 이순간/내 혀와 입술에 와닿는 이 꺼끌꺼끌하고 단단한 빗방울/.../모래비가 내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끝내 목위로 차오르며 나를 덮는다/아,나는 이렇게 모래속에서 지워져간다"(모래 구름 아래서 중)
모래비가 세상을 뒤덮고 책의 불길을 잠재워도 상관없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으니 천년뒤 한 고고학자에 의해 모래 도시가 발굴될때 매장된 자들은 모래를 털고 일어나 웃으며 손내밀 것이다.
시인은 오늘 "쓸쓸히 저무는 하루를 등지고 말없이 비틀거리며 걸을"뿐이다.
겨울 저녁의 분위기가 전편을 지배하는 이번 시집은 죽음과 허무를 배면에 깔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는 발문에서 "중세적 이미지가 시적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달팽이처럼 기어갈수 밖에 없는 우주적 슴픔은 청년 신비주의자의 비애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