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 경희대 교수 / 아태국제대학원장 >


국책연구기관 연구결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나.

용역을 발주한 정부,아니면 연구를 담당한 기관에 속해야 하는가.

최근 정부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발표를 통제했다는 보도의 여진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용역계약 당시 연구결과의 소유권과 외부발표에 대한 제약조건이 사전에 명시되지 않았다면,정부가 사후에 이를 통제하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욱이 마음에 맞지 않는 연구결과를 선별하여 발표를 억제하고,전망치를 수정토록 압박했다는 주장은 비민주적 후진국정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최고의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연구원들보다 더 잘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망치를 유도하는 상황설명이 설득력을 갖지 못할 때,이러한 압박은 비합리적이며 반지성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편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정부가 연구방향 등에 대해서 국책연구기관에 주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책임있는 기관이라면 사전에 연구결과까지도 예상하고 연구수행자의 능력도 검증한 후 용역발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예상도 못하는 연구사업이 있다면,발주하는 정부기관이나 연구수행자 모두 무책임하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책기관에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연구를 맡기는 정부는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나 정부정책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없는 연구자가 정책연구를 수행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결과의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우리의 근본적 문제는 예전 사회주의체제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정도로 국책연구기관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경제 당시 기술개발과 경제운영에 관한 연구를 담당하라고 KIST와 KDI를 세운 이후 각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연구원을 만들게 됐다.

공무원의 연구능력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는 출연연구원이 정책논리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다른 나라가 갖고 있지 않은 제도를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이의 유용성을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국책연구기관 관리체제를 2년전에 개편했다.

아쉽게도 문제의 본질을 빗겨간 처방이었으며,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체제로 전환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정부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업무 중복을 없앤다는 명분때문에 기관간의 경쟁을 줄이게 됐다.

소관부처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겠다는 발상은 국책연구기관으로 존재할 필요성을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기관운영예산의 상당부분을 민간부문으로부터의 용역으로 충당하도록 한 것은 이미 국책기관으로서의 유용성과 존립기반을 붕괴시킨 처사다.

이익집단의 의견을 대변할 개연성이 있는 민간부문의 용역을 수행하는 것은 국책연구소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연구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 민간부문들이 국책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책기관 연구원들도 정책 자료에 대한 접근이 자유롭고,동시에 정부의 암묵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의 의견에 사회가 귀를 기울인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국책기관에 속하지 않았다면,그들이 저술한 대부분의 보고서에 사회가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경쟁체제의 도입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아가야 한다.

국책기관으로서의 특성을 상당부분 없앤 이상 정부가 불필요하게 칸막이식 업무분장을 지시해서는 안된다.

우수한 연구기관은 정부로부터 선별해서 용역을 받고,우수하지 못한 기관은 도태되는 경쟁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

연구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발주하고 또한 결과를 사후에 평가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이를 수행할 능력이 없으면 국책기관의 연구원을 이러한 역할을 하는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책연구가 중심을 이루는 선진정부가 운영되는 방법이다.

chs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