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노조간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앞으로 금융개혁은 더욱 험로를 걷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금융개혁의 큰 틀로 추진해온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나 예금부분보호제(보장한도 축소)까지 흥정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또 집단행동이 정부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향후 개혁방법에 대해서도 금융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과연 개혁의 액셀레이터를 계속 밟아갈 수 있을 지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은행파업이 정부에 관치금융 청산 등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반성의 계기를 갖게 됐다는 점에선 발전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참에 대출압력, 인사개입 등을 근본적으로 뿌리뽑는다면 금융선진화를 위해서도 소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은행 파업을 전후해 외신들의 반응을 보면 타결내용이 대외신인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금융노조의 반발에도 불구, 한국은 구조조정 외에 달리 선택방안이 없다"(로이터)고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지주회사가 합병보다 훨씬 유연하고 금융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금융노조는 "노사협상"을 "노정협상"으로 확대시켜 은행장들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푸는 실마리를 전리품을 거둬들였다.

그만큼 은행내에서 목소리를 높일 공산이 크다.

반면 정부로선 파국은 막았다는 성과 외엔 별로 내세울 명분과 실리가 없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애초부터 근로조건이 아닌 정부정책을 문제삼은 금융노조와 장관들이 한 테이블에서 협상을 벌이고 정책을 쟁점화한게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파업이 "은행의 마지막 파업이 될 것"이라고 누누히 강조해 왔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파업은행에 아무도 돈을 맡기지 않는 만큼 시장에서 평가하고 응징할 것이란 얘기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은행직원에 대한 호소문에서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법을 보류하고 3년간 구조조정을 중단한다고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부가 노조에 끌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소프트웨어와 질적인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2단계 금융개혁이 금융종사자들의 협조와 참여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요인도 깔려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정부가 1차 금융개혁 때 공적자금 64조원을 옆에 놓고 강제로 합병 퇴출시킬 때는 차라리 쉬웠다"면서 "당사자, 이해관계자를 설득시키면서 공적자금도 부족한채 가야할 2차 개혁은 험한 길일 수 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되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강제편입시키지 않겠다면 지주회사 외에 이들 은행을 살리는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마땅한 답이 없다.

한빛 조흥 외환은행 등도 시장에서만 받아주면 독자생존을 꾀할 태세다.

조흥은행은 독자 지주회사 설립쪽으로 상당히 깊이 연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감위도 스스로 살게 내버려 둬야 할지 고민이다.

관계자는 "당사자들은 홀로서기가 가능하다지만 정작 시장에서 문제가 터졌을땐 이미 손쓰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예금보호 한도(1인당 2천만원) 확대검토가 노조와의 협상이 계기가 된 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정부내 중론이다.

정부는 진작부터 한도확대를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었지만 국회차원의 논의를 바랐다.

또 이로인해 정부의 개혁원칙이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된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는 "파업문제는 금융개혁에 대한 정부의 임기응변식 대응책이 만들어낸 불행한 사태"라면서 "정부는 장기적인 구조조정 전략과 밑그림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