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시기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이 내려온다.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시간 자동차로 달리면 낮은 돌담과 오밀조밀한 건물들이 인상적인 한 도시가 나온다.

바로 쑤저우(蘇州)다.

쑤저우는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물의 도시.

곳곳에 호수가 자리잡고 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약 1백년전(1899년) 베이징과 연결된 대운하가 폐쇄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중 하나였다.

시야에 언덕이 잡히지 않을 정도의 광활한 평원에서 산출되는 풍성한 곡식과 채소, 여기에 주변의 난징(南京)과 항저우(杭州) 등에서 밀려드는 비단은 이 곳을 중국 대대로 퇴직 관료들이 즐겨 안착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청나라 때만 해도 전체 1백21명의 장원(壯元)중 17명이나 이곳 출신일 정도로 "인재 배출구"로서 자부심도 있다.

경제적으로나 지적으로 자신감에 차 있던 쑤저우의 "한량"들은 이 곳을 "퇴기(退妓)의 집합처"로 만들었다.

중국의 절색(絶色)들은 수도(首都)로 몰려 중앙정부 관료들의 사랑을 탐하다가 20대 중.후반의 나이가 부담스러워지면 스스로 쑤저우로 내려왔다.

이곳 "한량"들은 나이든 퇴기들을 받아들일 만한 경제력과 지적수준이 있었다.

"쑤저우 미인"이라는 전통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줘정위안(拙政園).

쑤저우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져 위치한 이 정원은 명(明)대 관직에서 추방된 왕셴천(王獻臣)이란 사람이 낙향해 만든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개인정원들이 많다는 쑤저우에서도 4대 명원중 첫 손가락에 꼽힌다.

연못과 조경목, 정자로 구성된 이 곳엔 6월 초여름의 햇살을 받아 백화(白花)가 만발해 있고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분주하다.

그 옛적 사람의 풍류가 느껴지는 아담한 정원의 이름은 진대의 시 구절 "拙者之爲政(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에서 본딴 것.

쑤저우에 미인이 많다는 전통은 자신감 어린 냉소적인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하는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