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화백은 고 최순우 선생(미술사학자)의 말처럼 "의지의 작가요 정열의 뭉치"다.

한창 신나게 뛰어놀 보통학교 1학년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고,화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19세때 하늘같이 믿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삶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6.25 직전 전시회를 열었다가 작품을 몽땅 잃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고도 피난생활중 예수를 한국사람으로 표현한 성화 30점을 완성하고 반추상작업을 시도했다.

63세때 30년동안 아내 비서 친구 어머니 노릇을 해준 우향 박래현과 사별하는 슬픔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민화를 현대화한 "바보산수" 시리즈를 쏟아냈다.

뿐이랴.70대에 들어서선 대걸레자루로 힘이 넘쳐나는 수묵화를 그렸다.

그런가하면 농아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충북청원군 자신의 집에 청각장애자 시설인 운보공방을 열었다.

그는 이처럼 인생 고비고비마다 좌절하기는 커녕 꿋꿋한 의지와 탐구욕, 긍정적이고 진취적 자세로 새로운 세계를 이뤄냈다.

운보는 또 자유분방한 표현의 작가다.

뛰어난 소묘력과 빠르고 자유로운 필력으로 인물 화조 청록산수 바보산수 현대풍속도까지 다양한 세계를 섭렵했다.

초기의 인물화가 더없이 섬세하고 정교하다면 마구 달리는 군마, 수백마리의 참새나 게의 움직임을 담아낸 그림은 엄청난 힘과 스케일을 전한다.

청록산수엔 호방함과 시원함이, 바보산수 시리즈엔 조선조 민화의 정겨운 치기와 익살, 자연스런 생략과 대담한 변형의 멋이 가득하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운보 김기창 미수기념특별전"은 바로 이런 운보의 작품세계와 그의 치열한 삶의 궤적을 함께 살펴볼수 있는 자리다.

전시작은 전집도록(5권)에 실린 4천여점중 골라낸 대표작 88점으로 일본에 가있어 그동안 실물을 볼수 없던 "정청" 등 귀한 것들이 많다.

시대별로 놀랄만큼 다채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운보의 그림은 가혹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불같은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독보적 경지에 오른 노대가의 눈물과 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