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새벽 2시 벤처기업 33개가 입주해 있는 대덕대학내 대전소프트웨어지원센터.

인터미디어 조성윤씨(27)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와 함께 날밤을 새고 있었다.

조씨의 건너편 칸막이 뒤에서 두들기는 컴퓨터자판 소리가 사무실의 적막감을 깨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있다.

조씨를 비롯한 이회사 직원 3~4명이 밤샘 근무에 들어간지도 보름이 넘었다.

이회사가 개발한 인터넷 화상채팅 시스템을 하루라도 빨리 버전업시키기 위해서이다.

바로 옆 사무실의 인터미디어 계열 두루캠의 직원들도 며칠째 밤낮을 잊은채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한밤에 불쑥 나타난 기자를 만난 임상묵 팀장(29)은 "대화방 홈페이지를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철야작업중"이라며 한밤이라도 시간을 황금같이 쪼개쓰고 있다고 말했다.

철야작업을 위해 저녁을 든든하게 먹어 뒀지만 새벽이면 허기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럴땐 미리 준비한 빵과 음료수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사무실 한켠에는 빵 과자 라면 등 야식꺼리가 늘 준비되어 있다.

식사때를 놓치기 일쑤여서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마련한 비상식량이다.

주변에 음식점도 없고 배달도 만만치 않다.

이곳에 입주한 벤처기업들은 기술개발을 위해 시간과의 싸움 뿐아니라 식사를 때우는 일과도 전쟁도 치러야 한다.

하루세끼 식사 당번을 정하고 손수 밥을 지어먹어야 한다.

무더위와의 전쟁도 이들에겐 기술개발 못지 않은 고역이다.

임 팀장은 "열대야를 견디는 비결은 양말을 벗는게 최고"란다.

그들이 품은 꿈에 비해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지극히 소박하다.

비슷한 시간 한국과학기술원(KAIST)내 신기술창업지원단에서도 어김없이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단일 기관중 전국에서 가장 많은 벤처기업을 배출해 내는 이곳에서도 기술개발 열기는 무더위가 무색할 만큼이나 뜨겁다.

최근 세계수준의 음성인식기술을 개발한 SL2(대표 전화성.23)는 회사를 설립한 지난 3월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야간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밤낮이 따로 없다보니 야간작업이란 표현이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전산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전씨를 중심으로 학사,박사과정 학생 10여명이 모여 만든 이 벤처기업은 과기원 학생벤처 1호이다.

SL2는 새롬기술의 새롬데이터맨에 들어가는 음성인식기를 7천만원에 제공키로 계약을 맺는 개가를 올려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

전 사장은 "제품화되기까지 직원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새벽 작업을 밥먹듯이 하다보니 오히려 낮에는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덕밸리의 창업열기는 주변환경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과기원은 얼마전부터 센터 입주업체와 학생들을 위해 일부 구내식당을 새벽까지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토스트나 김밥 라면 등이 고작이지만 인기 만점이다.

과기원과 인접한 유성구 어은동 일대에도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는 식당이 많다.

하지만 교내로의 음식반입을 금지하고 있어 색다른 모습이 연출된다.

과기원 후문 경비를 맡고 있는 김석구씨(49)는 "교문 앞까지 음식배달 오토바이를 마중나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며 "깜깜한 야밤에 돈과 음식을 서로 교환하는 모습을 보면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 하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창업보육센터의 연구 열기도 이들 업체에 못지않다.

바로옆 1백여m 떨어진 유성구 어은동 한빛아파트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이곳에서는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보육센터 주차장은 한낮의 모습 그대로 차량들로 가득차 있다.

통행차량이 한산한 과기원내 도로를 따라 야간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어두 컴컴한 잔디밭에 모여 뭔가를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들,그리고 어디론가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대덕밸리에는 밤과 낮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