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115) 제1부 1997년 가을 <11> '여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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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호가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경이었다.
남편인 자신도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진성호는 담당의사인 민의준 박사 사무실로 곧장 갔다.
그가 미국에서 전화로 부탁했기 때문인지 민 박사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성호는 민 박사와 인사를 나눈 후 아내의 병세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직까지도 검사중이라 장담을 할 수 없으나 2개월에서 5개월 내에 의식이 부분적으로 회복될 확률은 50퍼센트를 넘는다고 민 박사가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알려주었다.
진성호는 아내가 최고의 의료혜택을 받기를 원하며, 아내의 의식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검사 결과와 병세가 어떻게 진전되는지 좀 두고 보면서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민 박사는 그의 제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진성호는 민 박사의 허락을 얻어 아내를 보러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중환자실에 여러 침대가 놓여 있었다.
간호사가 창 쪽 침대에 시선을 주었다.
진성호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산소호흡기를 입에 꽂고 있는 환자는 아내가 틀림없었다.
이마에 가벼운 찰과상이 눈에 띄었으나 화장하지 않은 아내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평안스러워 보였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회오리바람이 그칠줄 몰랐던 9년간의 결혼생활이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지금처럼 아내가 평안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아내의 모습은 항상 무엇에 쫓기는 분위기였고, 별것 아닌 지식이나 미를 과시하려는데 급급한 모습이었고, 주위 사람들을 위압하려 드는 태도였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었나?
진성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질문을 했다.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그러면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사랑을 표시해본 적이 있었나?
똑같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진성호는 자신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아니 아내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무엇에 쫓기고 있었으며 힘을 과시하려 들었고, 상대방을 위압하려 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신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조직을 살리려고,자신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쳐야 하는 입장에 있지 않았는가!
반면 아내는 기껏 하찮은 한 여자의 적밖에 없지 않았는가.
진성호는 김명희를 염두에 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뒤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성호는 뒤돌아보았다.
장인인 이인환 교수가 들어서고 있었다.
진성호는 그에게로 다가가 목례를 했다.
장인이 손을 내밀자 진성호가 두 손으로 잡았다.
"죄송합니다"
진성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닐세, 내가 오히려 자네한테 미안하이"
"민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도 들었네"
"외국에라도 가서 치료를 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도 들었네. 고맙네"
"의식을 회복하리라고 확신합니다"
"나도 굳게 믿고 있네"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편인 자신도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진성호는 담당의사인 민의준 박사 사무실로 곧장 갔다.
그가 미국에서 전화로 부탁했기 때문인지 민 박사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성호는 민 박사와 인사를 나눈 후 아내의 병세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직까지도 검사중이라 장담을 할 수 없으나 2개월에서 5개월 내에 의식이 부분적으로 회복될 확률은 50퍼센트를 넘는다고 민 박사가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알려주었다.
진성호는 아내가 최고의 의료혜택을 받기를 원하며, 아내의 의식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검사 결과와 병세가 어떻게 진전되는지 좀 두고 보면서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민 박사는 그의 제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진성호는 민 박사의 허락을 얻어 아내를 보러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중환자실에 여러 침대가 놓여 있었다.
간호사가 창 쪽 침대에 시선을 주었다.
진성호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산소호흡기를 입에 꽂고 있는 환자는 아내가 틀림없었다.
이마에 가벼운 찰과상이 눈에 띄었으나 화장하지 않은 아내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평안스러워 보였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회오리바람이 그칠줄 몰랐던 9년간의 결혼생활이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지금처럼 아내가 평안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아내의 모습은 항상 무엇에 쫓기는 분위기였고, 별것 아닌 지식이나 미를 과시하려는데 급급한 모습이었고, 주위 사람들을 위압하려 드는 태도였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었나?
진성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질문을 했다.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그러면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사랑을 표시해본 적이 있었나?
똑같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진성호는 자신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아니 아내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무엇에 쫓기고 있었으며 힘을 과시하려 들었고, 상대방을 위압하려 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신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조직을 살리려고,자신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쳐야 하는 입장에 있지 않았는가!
반면 아내는 기껏 하찮은 한 여자의 적밖에 없지 않았는가.
진성호는 김명희를 염두에 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뒤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성호는 뒤돌아보았다.
장인인 이인환 교수가 들어서고 있었다.
진성호는 그에게로 다가가 목례를 했다.
장인이 손을 내밀자 진성호가 두 손으로 잡았다.
"죄송합니다"
진성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닐세, 내가 오히려 자네한테 미안하이"
"민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도 들었네"
"외국에라도 가서 치료를 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도 들었네. 고맙네"
"의식을 회복하리라고 확신합니다"
"나도 굳게 믿고 있네"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