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는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추운 겨울들판이나 인적 없는 산중에서 제작진은 생명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지난 13일 백두대간의 오대산 자락에서 만난 EBS 제작진의 모습은 영락없이 산사람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들풀에 긁혀 상처투성인 팔뚝, 풀물이 잔뜩 오른 바지.

벌써 3일째 날밤을 새고 있다.

"좋아서 미치지 않으며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이효종 PD의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산비탈에서 "장수 풍뎅이"를 발견한 카메라맨은 렌즈를 들이민다.

미동도 않고 있지만 제작진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작업에 이골이 난 듯하다.

이효종 PD는 "생명체를 쫓아다니는게 아니라 그들의 습성과 생태를 이해해서 길목을 기다려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2년전 혹한의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며 한국의 호랑이와 야생동물을 찾아나선 다큐멘터리의 조연출을 맡았었다.

그때의 경험들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물 프로그램에서도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EBS가 자연 다큐멘터리 출신 PD들을 투입, 초등학생 대상의 과학프로그램들을 사전제작하고 있는 현장이다.

사전제작 프로그램은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프로그램의 제작을 끝내는 제작시스템으로 EBS가 영국의 BBC, 일본의 NHK를 본따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생물 제작팀이 전국의 산하를 누비며 카메라에 담은 다양한 동.식물의 세계는 내년 3월부터 "생명의 눈"(가제)이라는 제목으로 총 40회에게 걸쳐 방송된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생명의 눈"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독특한 기획이 눈에 띈다.

생물들의 모습을 담은 화면에에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합성, 아이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형식과 "공룡을 만나다" "야생화 이름지어주기" 등 테마별로 생태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이뤄진다.

이 PD는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해 친숙한 시각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