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억8천만달러 수출계약.
거창한 잔치를 벌일 만도 하다.
하지만 조영선(39) 싸이버뱅크 사장은 샴페인 뚜껑을 따지 않았다.
대신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 조용히 묵상에 잠겼다.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억누른 채.
포도열매는 목숨의 산물이었기 때문.
서울 강남역 부근의 싸이버뱅크.
이 회사가 스페인 비텔컴에 휴대용 무선인터넷 단말기 2백만대를 수출키로 최근 계약을 맺은 데는 죽음을 각오한 임직원의 노력이 깔려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간부가 유명을 달리하고 여러 사람이 구급차에 실려갔다.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조사장이 금호그룹 계열사 사장을 거쳐 이 회사를 맡은 것은 작년 8월.
황삼청 박사(현재 이사)가 작년초 회사를 출범시켰지만 실제 창업은 조사장이 주도한 것.
이 땅에 야후나 시스코 같은 세계적인 업체를 만들어보겠다며 첫 사업으로 무선 인터넷 단말기 분야에 뛰어들었다.
11월 16일.
''드래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멀티팜''개발을 위한 40일 작전이다.
손바닥 크기의 제품으로 무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첨단제품.
몇몇 외국 대기업도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었다.
승부의 요체는 기술과 스피드.
자발적인 밤샘 작업이 지속됐다.
이동통신업체에서 옮겨온 한 임원은 출근 첫날 야전침대를 들고 왔다.
연구원 한명은 골반의 뼈조각이 떨어져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쉴 수 없다며 수술을 미뤘다.
병원에 입원하는 직원들이 속출했다.
선임연구원 2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중간 간부가 과로상태에서 새벽 2시께 귀가하다가 숨을 거두는 일까지 벌어졌다.
명절과 연말연시도 없이 일하던 직원들이 개발을 중단한 것은 이때뿐.
전직원이 상가를 찾아 눈물을 흘렸다.
이런 노력끝에 이 제품은 외국 굴지 기업의 제품보다 6개월이상 먼저 선보였다.
종합상사 대우의 주선으로 지난 3월 비텔콤을 소개받자 해외영업부장은 대우맨들과 함께 계약성사를 위해 뛰었다.
불과 3개월동안 다닌 해외출장은 20여회, 비행거리는 지구 5바퀴에 달한다.
마침내 지난달말 싸이버뱅크의 누추한 회의실로 연간 4조원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비텔콤 사장단이 들어섰다.
최종 조율을 위한 상담에서 실무진은 몇십만대 수준의 계약을 추진했으나 조사장은 2백만대를 고집했다.
시장성을 확신한 데 따른 것.6시간동안의 마라톤 회담 끝에 조사장의 안대로 양측은 서명했다.
싸이버뱅크는 이제 일본시장 공략을 위해 스미토모와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으며 미국 통신업체와도 교섭하고 있다.
이들과의 상담에서 어떤 탐스런 열매를 맺을지 기대해보자.
< 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