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은행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듯 했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구지역 건설업체 (주)우방에 대한 은행권의 자금지원 논의가 본격화됐던 지난 19일.은행들은 오래 전부터 쟁점이 돼왔던 이 문제를 매듭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채권은행인 서울은행이 채권단회의를 연기했다.

우방이 필요로 하는 신규자금 1천5백51억원중 영업정지중인 영남종금 몫 85억원을 다른 채권금융회사들에 분담시키는 문제가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20일 오전 11시 다시 채권단협의회가 열렸다.

75%의 찬성을 얻어야 자금지원이 이뤄지고 찬성이 25%를 밑돌면 안건자체가 부결된다.

결과는 67%찬성으로 "미결"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이번에는 채권단간 지원자금 배분이 이유가 됐다.

신규지원자금 1천5백51억원 중 절반 가량은 우방이 아파트부지 매입대금용으로 서울 농협 한미 제일은행 등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데 쓰여지기 때문이다.

이날 반대표를 던진 국민은행 관계자는 "결국 다른 은행으로 흘러들어갈 돈인데 우리가 똑같이 부담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밤 우방은 25억5천만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대구은행에 손을 벌렸다.

이미 지난달 3차례나 1차부도를 냈기 때문에 이날 1차부도를 내면 최종 부도처리될 절박한 상황이었다.

21일 채권단은 다시 모여 자금지원결정을 내렸다.

이틀만에 은행들의 자기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회사 자체만 놓고 볼 때 자금을 또 쏟아부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방문제는 이미 경제문제라기보다는 대구지역 정서를 감안해야 하는 정치문제가 됐고 서울은행도 이 점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우방이 살더라도 "정치적 고려에 의한 부실기업 연명"이라는 비판을 떨칠수 없게 됐다.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대통령의 선언도,관치금융 청산에 합의했다는 정부와 금융노조의 공언도 모두 공언이 되고 있다.

박민하 경제부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