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123) 제1부 : 1997년 가을 <12> 음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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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상화
진성호가 레인보우 클럽에서 이미지와 같이 있는 늦은 밤 시간,황무석은 이정숙 사건의 수사팀장인 김규정 계장을 만나고 있었다.
미아리,그 유명한 홍등가인 텍사스촌을 지척에 둔 김 계장의 집 근처에 있는 허름한 지하다방에서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김규정은 그날 저녁 직원 회식에서 전작이 있었던지 약간 술기운이 올라 있었지만 취해 보이지는 않았다.
김규정이 정한 장소로 판단컨대 황무석의 친구인 본청의 상관이 부탁해 마지못해 만난다는 의사를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김규정은 자리에 앉자마자 따끈한 우유를 시켰다.
저녁 11시가 가까운 시간에 환자도 아니면서 따끈한 우유를 시켜 마시는 자를 구워삶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황무석은 직감했다.
한국에서 강직하다는 별의별 공직자를 상대해봤지만,한밤중에 나이도 한참이나 많은 손님을 집 근처 다방으로 불러놓고 우유를 시켜 마시는 자를 대하기는 황무석으로서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황무석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커피를 시켰다.
차마 그자와 같이 이 시간에 따끈한 우유를 마시기는 싫었고,어차피 오늘밤 잠자기는 그른 것 같아 잠이라도 쫓아버릴 요량이었다.
김규정이 레지가 가지고 온 따끈한 우유를 반 컵 정도 마시고 내려놓았다.
허름한 지하다방 분위기와 이발소 그림 수준을 약간 넘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과 껌을 짝짝 소리내 씹으면서 나타난 레지가 풍기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와 따끈한 우유를 마시는 김규정의 모습이 마치 1970년대 초,그러니까 그가 30대 초반이었을 때의 서울을 연상시켰다.
문득 좋은 이야깃거리가 떠올랐다.
"김형,우유를 보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어요"
황무석이 말했다.
김규정이 다소 뜨악한 눈초리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만나만 보라는 상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만나는 판에 "김형"이라고 부르는 황무석의 갑작스런 친근감의 표현이 못마땅했는지,혹은 이야기할 핵심은 뻔한데 우유를 화제로 삼는 황무석의 천연덕스러움이 역겨웠는지,그건 황무석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튼 황무석은 세상에 걱정이란 있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시간이 자기 시간인 양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마치 친구에게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려주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말이지요. 제가 한강 옆에 있는 반포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20평짜리 작은 아파트였지만 그때 처음으로 연탄 아궁이 신세를 면했지요.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고,나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제 나이 30대에 들어서 대해실업에서 과장으로 막 승진했을 때지요. 아,참..."
황무석은 무슨 다른 생각이 난 듯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김규정은 점점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황무석이 너무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인지 경청하는 체하는 듯했다.
"그때는 회사 이름이 지금의 대해실업이 아니고 대하실업이었어요. 지금의 진성호 회장이 회사를 키우겠다고 회사 이름을 바꿨지요. 좁은 강에서 드넓은 바다로 키우겠다는 의도였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진성호 회장의 젊은 리더십 아래 회사가 수십 배 컸지요"
진성호가 레인보우 클럽에서 이미지와 같이 있는 늦은 밤 시간,황무석은 이정숙 사건의 수사팀장인 김규정 계장을 만나고 있었다.
미아리,그 유명한 홍등가인 텍사스촌을 지척에 둔 김 계장의 집 근처에 있는 허름한 지하다방에서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김규정은 그날 저녁 직원 회식에서 전작이 있었던지 약간 술기운이 올라 있었지만 취해 보이지는 않았다.
김규정이 정한 장소로 판단컨대 황무석의 친구인 본청의 상관이 부탁해 마지못해 만난다는 의사를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김규정은 자리에 앉자마자 따끈한 우유를 시켰다.
저녁 11시가 가까운 시간에 환자도 아니면서 따끈한 우유를 시켜 마시는 자를 구워삶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황무석은 직감했다.
한국에서 강직하다는 별의별 공직자를 상대해봤지만,한밤중에 나이도 한참이나 많은 손님을 집 근처 다방으로 불러놓고 우유를 시켜 마시는 자를 대하기는 황무석으로서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황무석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커피를 시켰다.
차마 그자와 같이 이 시간에 따끈한 우유를 마시기는 싫었고,어차피 오늘밤 잠자기는 그른 것 같아 잠이라도 쫓아버릴 요량이었다.
김규정이 레지가 가지고 온 따끈한 우유를 반 컵 정도 마시고 내려놓았다.
허름한 지하다방 분위기와 이발소 그림 수준을 약간 넘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과 껌을 짝짝 소리내 씹으면서 나타난 레지가 풍기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와 따끈한 우유를 마시는 김규정의 모습이 마치 1970년대 초,그러니까 그가 30대 초반이었을 때의 서울을 연상시켰다.
문득 좋은 이야깃거리가 떠올랐다.
"김형,우유를 보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어요"
황무석이 말했다.
김규정이 다소 뜨악한 눈초리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만나만 보라는 상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만나는 판에 "김형"이라고 부르는 황무석의 갑작스런 친근감의 표현이 못마땅했는지,혹은 이야기할 핵심은 뻔한데 우유를 화제로 삼는 황무석의 천연덕스러움이 역겨웠는지,그건 황무석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튼 황무석은 세상에 걱정이란 있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시간이 자기 시간인 양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마치 친구에게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려주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말이지요. 제가 한강 옆에 있는 반포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20평짜리 작은 아파트였지만 그때 처음으로 연탄 아궁이 신세를 면했지요.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고,나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제 나이 30대에 들어서 대해실업에서 과장으로 막 승진했을 때지요. 아,참..."
황무석은 무슨 다른 생각이 난 듯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김규정은 점점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황무석이 너무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인지 경청하는 체하는 듯했다.
"그때는 회사 이름이 지금의 대해실업이 아니고 대하실업이었어요. 지금의 진성호 회장이 회사를 키우겠다고 회사 이름을 바꿨지요. 좁은 강에서 드넓은 바다로 키우겠다는 의도였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진성호 회장의 젊은 리더십 아래 회사가 수십 배 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