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관계자들은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운영위에서 변칙 처리한 후 한사코 "날치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단독처리나 강행처리 정도로 써달라고 기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날치기란 말이 국어사전에 "남의 물건을 재빨리 채뜨려 가는 짓"을 의미하고 있는데다 "돈치기""아리랑치기" 등 "치기"란 말이 들어간 단어치고 좋은 의미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민주당의 하소연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들은 논리적 근거도 들이댔다.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함께 있었기 때에는 날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날치기와 강행처리를 구분하는 법규정이나 명확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의장이나 위원장 등 회의 주재자가 정상적으로 회의장 좌석에 앉지 않은 상태에서 표결과정 없이 물리력을 동원해 안건을 처리하면 통상 변칙처리나 날치기로 불려졌다.

또 상대당의 묵시적 동의가 있거나 특정 정당이 퇴장한 상태에서 안건이 처리되면 단독처리나 강행처리로 여겨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같은 형식적 차이보다는 처리한 안건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무리수를 쓰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절박한 상황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변칙처리는 명분이 약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1백36명이 서명한 법안을 한나라당이 상정조차 못하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는 국회법의 상정을 합리화시키는 근거가 될 지 모르지만 날치기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또 한나라당이 현재 20석에서 15석으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해주기로 약속해놓고 신의를 저버렸다고 주장하지만 공개적인 약속이 없었던데다 지금까지 정치관행상 이런 상황이라면 물밑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는 게 순서였다.

법안의 내용도 사실상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이 커트라인을 낮춰달라고 떼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의 관계개선 등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얽혀 급기야 여야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나름대로 정파간 득실이 있겠지만 싸우지 않는 국회를 바랬던 국민들의 여망이 무너졌다는 점에서 정치권 모두가 패자가 된 게임이었다.

이제 "상생의 정치니 뭐니 하면서 이상한 모습을 보였던 국회가 드디어 정상화 됐다"는 비아냥만 정치권에 맴돌고 있다.

<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