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는 잠잘 때 뿐이다. 밥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그는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 보봐르 역시 사르트르 못지 않은 사색가였다.

사르트르는 보봐르를 "나의 사랑스런 카스토르(castore)"라고 불렀는데 카스토르는 늘 무엇을 궁리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최근 번역된 보봐르의 "미국여행기"(열림원,1만2천원,백선희 옮김)는 욕심많은 카스토르의 지적 편력기다.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긴장이 느껴진다.

재료는 4개월간의 미국 체험.

결과는 철학책 한 권 분량의 기행문이다.

부피도 놀랍지만 무게도 만만치 않다.

보봐르는 최대한의 삶이 최대 선이라는 실존주의 원칙에 충실했다.

여행기는 비행기 탑승에서 시작된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 일생에서 뭔가 일어나는 순간은 손에 꼽을수 있는 정도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보봐르는 미래를 향해 뉴욕으로 날아간다.

때는 1947년.

파리를 해방시킨 미국은 마샬플랜을 통해 엄청난 물자를 쏟아부었다.

"미국은 지금 온 유럽을 먹여살린다는 자부심에 들떠있다. 그들은 유럽을 고분고분하지 않는 신하 취급한다"

보봐르는 유럽 망명객및 미국지식인을 만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편집인과의 대화.

"편집인은 미국 권력 꼭대기에 앉은 듯 빈정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프랑스는 실존주의를 즐긴다구요''그의 경멸은 철학 일반을,가난하면서도 현실을 인정할줄 모르는 프랑스 전체를 겨냥한 것이었다.
''당신네 프랑스인은 문제만 제기할 뿐 해결은 않지요.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해결은 합니다''"

보봐르는 지식인을 멸시하는 미국의 경영자를 "여자무용수에게 다리를 내보이라고 요구하는 극장주같다"고 비꼰다.

미국지식인은 대중을 믿지 않았다.

사르트르와 함께 앙가주망(참여)를 주장했던 보봐르는 이를 이해할수 없었다.

순회강연에 나선 보봐르는 미국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보봐르가 보기에 미국은 웃음 권하는 사회다.

"웃지 않는 것은 죄악(Not to grin is a sin)이란 말이 벽에 나붙을 정도.

보봐르는 미국인이 쾌활하고 친절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대부분 위선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흑백차별.

보봐르가 미국을 방문한 1947년엔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인 보봐르를 만나러 호텔에 오는 것이 눈총받을 일에 속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빌리 홀리데이와 루이 암스트롱 공연을 보러간 보봐르는 미국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 평가한다.

"미국을 좋아하세요"란 질문에 대한 답은 "50대 50"이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