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질서경제학회와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은 26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국가경제와 자동차산업"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백영훈 질서경제학회 회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국부유출을 막고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위해 대우자동차를 현대자동차-다임러크라이슬러 컨소시엄이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재관 자동차개발연구원 원장은 채권단이 대우차 매각을 서두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채권 회수차원이 아닌 자동차산업의 발전이라는 각도에서 대우차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발표와 토론 내용을 간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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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관 < 자동차개발연구원 원장 >

한국은 70년대 초까지 소형 승용차 한대도 제조하지 못하는 국가였다.

외국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물량도 3만대 수준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백달러 수준으로 이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였다.

그러나 73년 정부는 혁명적인 정책에 착수했다.

세계적 관례를 깨고 고유모델의 차량 생산정책을 추진했다.

외국에서 시판된 일이 없는 연료절약형 1천5백cc 차를 연간 5만대 이상 양산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정책을 추진한지 22년이 되던 94년.

한국은 2백31만대 생산으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의 생산국가로 발전하는 기적을 이룩했다.

이 과정은 전화위복의 연속이었다.

첫번째 전화위복의 계기는 외국업체의 투자기피였다.

73년 중국 주은래가 천명한 4원칙 때문에 당시 한국 업체와 합작을 추진하던 도요타는 "한국이나 대만과 협력하는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중국정부의 정책에 따라 한국에서 자진철수,중국으로 들어갔다.

또 포드는 한국시장 진입을 포기했고 GM은 투자를 기피했다.

이 사건들은 역설적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독자적 발전의 길을 걸을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두번째는 전화위복은 73년 유류파동이었다.

1차 석유파동으로 전세계는 혹심한 불황으로 빠져들었고 자동차 회사의 생산감축과 공장폐쇄가 이어졌다.

당시 한국은 유류절약형 고유모델 양산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 정책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강조할 것은 당시 한국의 고유 모델 자동차 양산 정책 추진의 기초가 동시에 마련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1960년대 포항종합제철소 건설계획을 비롯해 조선공업,중기계종합공장,특수강 공장,주물선 공장 등 자동차 공업 발전에 필수적인 기반이 확립되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은 국가공업화 발전을 주도하고 수출산업으로서 외화획득의 주역이 됐다.

최근 자동차 업체의 해외매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우차는 가장 해외진출이 활발했던 기업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IMF의 권고에 따라 멕시코 공기업들이 대부분 외국계로 넘어간 전철을 밟지 않을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력으로서 대우를 살려보려는 노력은 염두에 두지 않고 채권단이 매각을 서두르는 것은 큰 문제다.

국력증강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업체를 매각하려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역사적 의의를 모르는 조치다.

특히 동구 인도 중국 등에 진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에서 무조건 해외매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후 지금보다 훨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동차 산업을 세계 5위의 반열에 올려놓은 저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동차 산업이 강대할수록 한 국가의 국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의 예에서 볼수 있다.

이점을 고려하고 대우차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