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채권을 포기하고 수출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채무조정안을 거부하고 이라크 시장을 포기할 것인가"

국내 종합상사들이 이라크에 대한 거액의 수출미수채권의 처리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26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및 무역업계에 따르면 종합상사들이 최근 이라크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채무조정안을 놓고 고심중이다.

현재 국내 상사들은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정에서 군수물품을 수출했다가 걸프전 발발과 함께 내려진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로 약 3억달러의 대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현대종합상사가 7천8백만달러로 가장 많고 (주)대우 7천6백만달러,삼성물산 6천9백만달러,LG상사 2천4백만달러 SK글로벌이 1천1백50만달러의 미수채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 채권은 모두 장기 매출채권형태로 자산으로 분류돼있으나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악성채무.

상사들은 이라크 중앙은행 등으로부터 받은 신용장 사본만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라크 정부는 최근 이들 채권을 포기할 경우 채권액의 2배에 달하는 신규 거래물량을 제공하는 내용의 새로운 채무조정안을 조건을 제시했다.

1억달러의 채권을 가진 기업의 경우 2억달러의 신규 거래물량을 제공받고 채권은 포기하는 것이다.

종합상사는 현대상사를 주관사로 지난 4월 이라크 정부에 채권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청하는 한편 KOTRA를 통해 채무조정의 세부절차에 대한 정보수집에 주력하고 있다.

대우 관계자는 "중동시장이 마진이 높기 하지만 50% 이상의 이익을 볼 수는 없다"면서도 "채권을 받아낼 현실적인 방법도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LG관계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1개 업체당 약 9백억~1백30억원 이상의 손실을 일시에 떨어내야 한다"며 "이 경우 올해 장사는 사실상 끝난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KOTRA는 이번 기회를 통해 경제제재조치 해제 이후 예상되는 천문학적 액수의 전후복구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국내업체는 유엔배상위원회(UNCC)에 피해보상을 청구했으며 이로 인해 이라크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시장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었다.

또 이라크의 대외채무가 약 1천3백억 달러에 달해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되더라도 최소 7년거치 20년 분할상환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 어차피 돈을 다 받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KOTRA 관계자는 "독일과 프랑스,영국업체 등은 이라크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미국과 일본업체와도 채무조정 협의가 진행중"이라며 "국내업체들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이라크시장을 포기하지 않는 방안을 빨리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