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작가들은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미술작업 속에 끌어들이고 있나.

서울대박물관이 이러한 물음에 해답을 제시할 전시회를 마련했다.

역사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해온 서울대 출신 중견작가 5명이 참여하는 설치미술전이 바로 그것.

오는 9월1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여 국내외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임옥상 문주 박성태 윤동천 조덕현씨 등의 독특한 작품들이 내걸린다.

대학 때 광주민주화항쟁을 경험한 박성태씨는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익명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온 작가.

이번 전시에는 2천명의 얼굴형상을 일일이 떠서 만든 ‘일식,2000’을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흙을 구운 후 바닥에 던지거나 충격을 주어 삶에 찌든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박씨의 또 다른 출품작은 여러 옹기 속에 형상이 반쯤 드러나 있는 흙으로 빚어진 갓난아기의 모습.

자궁 또는 씨를 잉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져온 옹기 속에 아기들을 가둠으로써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이화여대교수 조덕현씨의 작품은 이화여대 고고학발굴팀이 전남 영암군에서 1천5백년 전 만들어진 철제로 된 개의 형상들을 발굴했다는 가상적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영암군의 발굴현장에서 벗어나 서울대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개의 형상들은 네면으로 된 거울 안에서 무한대로 반복되고 투사된다.

유물들이 발굴현장에서 미술관으로 옮겨져 전시되면 원래의 역사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임옥상은 흙을 우리민족의 젖줄처럼 인식해온 작가.

이번 작품은 균열이 생기는 흙의 약점을 보완해 건축내장재로 쓸 수 있게 개발된 특수흙을 사용했다.

3m에 달하는 누워있는 얼굴 작품은 일종의 건축물이다.

관람자는 목 뒤의 입구를 통해 두상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안에는 하품 재채기 성행위소리 등이 울려퍼진다.

문주는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전통적 소재와 미감을 표현해온 작가.

이번 전시에는 수평선의 높이가 서로 다른 바다사진들을 프로그램밍,10대의 모니터를 통해 비쳐지게 한 ‘시간의 바다’를 출품했다.

관람자가 접근하면 모니터 화면들이 자동으로 움직여 수평선이 일치된다.

작가는 자연의 본질이란 한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제시해온 윤동천은 최근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꽃바다’를 선보이고 있다.

중앙에 길을 만들고 그 양쪽에 사람머리 정도 높이에 빨강과 분홍색의 종이꽃들을 쭉 꽂은 작품으로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방문 때 붉은 종이꽃을 열렬히 흔들던 평양시민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02)880-5333

윤기설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