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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正祖 20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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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의 22대왕 정조는 세종 처럼 학문을 좋아했다.

    그는 국왕이었지만 당대를 대표할 만한 학자이자 예술가로 방대한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1백84권 1백책과 ''파초''''국화''등 문인화도 남겼다.

    정조는 조선사회가 근대화를 지향하는 시점이었던 18세기말 사회 경제의 변동기 24년동안을 왕위에 있으면서 개혁에 정열을 쏟았다.

    세종이 집현전을 세워 정치를 구현했던것 처럼 그는 규장각을 설립하고 학자들과 함께 개혁정책을 이끌어 냈다.

    8만여권의 장서를 갖고 있었던 규장각은 왕립도서관 역할만 한것이 아니라 학술과 정책연구,출판은 물론 정책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 핵심적 정치기구였다.

    조정의 문신들 가운데 37세 이하의 자질있는 자들을 선발해 규장각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이른바 초계문신(抄啓文臣)제도다.

    정조는 이들과 규장각에서 밤을 지새며 토론을 벌였다.

    10회에 걸쳐 뽑힌 초계문신들은 1백명에 달해 그의 말년 조정에는 규장각출신이 아닌 자가 드물었다.

    북학파 박지원의 제자인 서얼출신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를 규장각 검서관으로 과감하게 등용해 서얼출신의 관계진출 길을 열어 주었다.

    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중인출신들의 위항(委港)문학도 적극 지원했다.

    천주교에 비교적 관대했던 것도 정조의 혁신적 사고의 틀을 보여주는 예다.

    유학의 신구이념에 정통했던 그는 조선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대가다운 풍모도 보였다.

    그림의 진경산수,글씨의 동국진체 등 진경문화가 만개한 것도 정조때였다.

    문예군주의 등장으로 문예부흥기를 맞은 백성들은 마지막 태평성대를 누렸다.

    정조의 개혁정책중 핵심은 신분제도 변화를 예견한 말년의 노비제 혁파 구상이다.

    몇차례 논의했으나 찬반이 엇갈려 구상에 그쳤지만 노비제를 없애야 겠다는 그의 결심만은 확고했다.

    노비제 혁파가 뜻대로 실현됐다면 한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정조의 2백주기(周忌)가 되는 날이다.

    그는 유교적 계몽절대군주였으나 사회 경제적인 변화와 거의 때를 맞춰 조선왕조를 개혁하려 했던 대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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