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철 < 고려대 명예교수 / 철학 >

지난 총선때 ''바꿔 바꿔''란 노래가 유행했다.

그 노랫말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라는 선동조였다.

''바꾸라''는 것은 슬로건으로서는 대중적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개혁은 구호수준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되는 것이 없다.

오히려 ''개혁''소리만 거듭되면 ''개혁 피곤증''이 올 수 있다.

사실 모든 것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외침엔,바뀌어서는 안될 사회 기본적 가치관의 파괴가 뒤따를 수도 있다.

또 마땅한 대안도 없을 때에는 도덕적 니힐리즘이 자리잡게 된다.

지난 2년간 우리는 개혁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동안 배운 것은 착실히 준비된 개혁이 아닐 때 평지풍파의 비난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1997년 IMF 금융위기는 국부의 절반을 삽시간에 날려버린 ''환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그 저변에 도덕적 해이가 깔려 있었다.

금융계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금융노조와의 ''노·정 타협''이 이루어졌다.

본래 노조운동은 노·사 관계가 기본이다.

그런데 ''사'', 즉 경영자는 어디 가고 없다.

여기서 ''사''측의 무능,무력과 부도덕이 드러나며 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커진 것을 볼 수 있다.

IMF 위기는 70년대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정실자본주의''에서 비롯됐다.

지난날 기업간의 경쟁을 보면 공정한 시장경쟁에 철저했던 기업은 권력의 연줄을 가진 기업에 오히려 패배하게 되는 ''불공정''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기업에 대한 정부의 과보호 속에서 기업의 실책이 결과적으로 국민에 전가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이 바닥났다.

그러고도 모자라 다시 부실 금융기관에 긴급지원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도덕적 해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회기강의 문란 밑에는 이런 도덕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개혁이 정부주도형에 머물러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큰 정부''가 되고 건전한 시장에서 공정의 덕이나 시민윤리의 성숙도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중앙명령사회에서는 시민사회가 자라지 못한다.

하이에크의 처방에 의하면 개혁의 중심이 정치권력이 아니라 ''법의 지배''에 놓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국회와 정부가 제정하는 법제(法制)와 자생적 질서로서의 법(law)을 엄격히 구별했다.

최근 의약분업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개혁의도만 보면 선의의 이상이다.

그러나 그것을 ''법제''로 강행한다고 해서 개혁이 성공할 공산이 큰 것이 아니다.

개혁의 성패는 그 개혁안이 강제력 없이도 시장질서로 정착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자유사회의 개혁은 항해하면서 부분 수선을 거듭하는 ''노이라트의 배''와 같아야 한다.

5공화국 정권은 과열과외를 법제와 강권으로 화끈하게 ''개혁''했다.

하지만 최근 과외의 법제적 금령은 ''위헌''으로 판결났다.

개혁의 강행에서 나타나는 비토현상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시장적 신호로 그 의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최근 사회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각종 사건들 중에는 집단이기주의의 일면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유있는 항의''의 일면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개혁은 어려운 난공사다.

70년대 이래 우리사회에서 ''도덕''을 논하면 시대 착오적 넋두리로 치부되는 것이 예사였다.

개발독재 이래 오늘까지 성공을 위한 동기부여는 잘했다.

그러나 그 경쟁수단의 윤리적 규범을 무시했다.

다시 컴퓨터·인터넷 등 지식·정보화과정에서도 경쟁의 윤리가 결여되고 있다.

더욱이 컴퓨터와 같은 테크놀로지분야에서는 사회에 큰 손실을 입히는 해커들이 자신의 기술력에 쾌감을 만끽할 뿐,윤리적 죄의식은 전혀 없다.

근대화의 한계는 경제적 물량적 성장에만 전념한 나머지 도덕적 성숙을 소홀히 한 점이다.

근대화의 시장원리주의나 진보주의 정서 모두 기성규범을 누가 먼저 깨뜨리는가의 ''바꿔 바꿔''식 탈규범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것이 자유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런 뜻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이도록 선고되었다''고 했다.

자유는 자기 구속이며 공동체규범의 준수에 그 에토스적 기반을 두고 있다.

진정한 개혁은 시민사회 에토스(기풍)의 성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