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임원직급파괴 바람이 불고있다.

기업의 "별"인 이사가 되면 상무,전무까지는 웬만하면 오를수있었는데다 전무쯤되면 밀려서라도 부사장정도는 기대할 수 있었지만 최근들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고있다.

한번 별을 달면 5-6년정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옛말이 되고있다.

LG 두산 제일제당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평균 6단계인 임원직급을 절반수준으로 대폭 단축하고있다.

직급파괴는 전체 재계로 확산될 조짐이고 평사원급에 적용하는 회사도 나타나고있다.

기업들이 노리는 것은 현재 실적이 좋지않으면 과거 업적이나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바로 도태시키는 서구식 인사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서구식 인사시스템 확산=(주)두산 전자부문 이태희(48) 상무는 올초 이사에서 상무로 명함을 바꿨다.

그는 승진 축하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사실은 두산그룹의 임원 직급이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6단계에서 ''상무→부사장→사장''의 3단계로 축소되면서 자동승진한 데 지나지 않았다.

이 상무는 상무 직함을 달면서 회사측과 올해 1억3천만달러의 수출목표를 달성한다는 연봉계약을 맺었다.

수출 목표를 초과달성할 경우 기본 연봉외에 최대 1천8백%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성과급을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바로 상무직을 내놓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서든 데스(Sudden Death·연장 경기에서 먼저 승점을 내면 경기를 끝내는 방식)''식 실적평가 시스템이다.

이 제도의 효과는 개인 실적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로 나타난다.

상무나 부사장 결재절차 없이 바로 사장을 만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른 대신 담당임원으로선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상무든 전무든 실적이 신통찮으면 그만둬야 한다.

두산은 올초 15개 계열사 1백3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전격적으로 채택,한번 이사 반열에 오르면 보통 5년 이상 자리보전을 해주던 ''철밥통 임원문화''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버렸다.

''일단 이사대우가 되면 웬만하면 상무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관행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평사원급도 직급파괴=두산그룹 계열 광고 대행사인 오리콤은 올초 사원과 대리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 6단계 직급 중 대리와 부국장 직급을 없애고 4단계로 줄였다.

LG도 최근 임원직급체계를 사장-부사장-전무-상무-상무보 5단계에서 사장-부사장-상무 3단계로 단순화하면서 옥상옥(屋上屋) 형식으로 돼 있는 조직운영 체제를 과감히 개편했다.

임원조직 구조를 ''대표이사-사업부장'' 또는 ''대표이사-사업본부장-사업부장'' 3단계로 축소해 성과와 보상,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경영단위로 세분화했다.

제일제당은 작년말 5단계인 사장-부사장-전무-상무-상무보 등 임원직급까지 사장-부사장-상무의 3단계로 줄이고 회사 내부에서 평사원들의 호칭을 아예 없앴다.

대신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도록 했다.

외국계 기업인 한국오라클의 경우 이미 작년부터 6백30명 임직원들의 직급을 완전히 없애고 사장-본부장-실장-팀장 등 4개 직책만 두고 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