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방송작가>

주위의 한 비기너가 요즘 무섭도록 칼을 갈고 있다.

''골프는 일단 시작했으면 잘 치고 봐야지,돈 버리고 바보 되는 것 같아서''가 맹연습의 동기다.

나 역시 그 서러움을 피부로 절감하고 산다.

며칠 전 한 수 위인 동반자들과 함께 한 라운드에서였다.

서러움은 첫 티잉그라운드에서 선배 한 분이 캐디에게 이런 주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우리 셋은 알아서 칠테니까,이 분만 집중적으로 봐주면 돼요"라며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오너를 정하는 쇠막대기 뽑기에서도 나를 제외한다.

바로 전 홀에서 내가 더 잘 쳤는데도 오너 자리를 주지 않는다.

내가 어드레스를 취할 때는 왁자지껄 떠들기까지 한다.

지켜봐도 별 볼일 없어서라고 생각해서인가.

가장 서러운 것은 그린에서였다.

선배들은 ''땡그렁'' 소리가 날 때까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퍼팅하면서 왜 나는 컵에 붙이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기브''를 주느냐 말이다.

물론 선배들은 빠른 진행을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다.

열등감일지도 모르지만 ''기브''라는 말이 ''쳐봤자 별 수 있겠느냐''는 말로 들리니 말이다.

비기너도 들어갈 때까지 퍼팅을 해봐야 퍼팅 실력을 키울 것 아닌가.

그렇게 서러운 18홀을 돌고 스코어 카드를 보니 웬일인지 친 것보다 훨씬 잘 나와 있었다.

그 선배가 캐디에게 아예 내 스코어는 하나씩 빼고 적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를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비기너의 골프도 골프다.

나도 정확하게 내 골프를 셈할 권리가 있다.

필요 이상의 특혜는 오히려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못치면 바보가 되는 골프,일단 잘 치고 봐야 한다''는 맞는 말이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오직 그 선배를 꺾어 놓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하다.

조만간 그 선배는 나에게 발목잡힐 것이다.

나는 고수가 되면 비기너 앞에서 이런 선배가 될 것이다.

퍼팅이 들어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 쳐보도록 하며,스코어도 봐주는 것 없이 철저하게 적게 하며,엄숙하게 샷을 지켜보고 조언해주는 선배.

비기너의 골프도 마땅히 존중할 줄 아는 그런 선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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