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는 텅 빈 레인보우 클럽에 이미지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클럽 안은 부분 조명만 군데군데 밝혀져 있을뿐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은 거의 비워졌고,술병 옆에 있는 두 자루의 촛불이 고개 숙인 이미지의 모습을 비쳐주었다.

그때까지 진성호는 이미지에게 취기 속에 마치 독백을 하듯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아내의 두 번에 걸친 유산 경험,김명희와의 사연,아내의 불륜과 자동차 사고,현재 의식불명인 아내의 상태,그리고 김명희와 만나지 않기로 한 장인과의 약속에 대해 마치 자신의 과거를 정리함으로써 무엇을 얻어내려는 듯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주가조작으로 인해 그가 처한 위기 때문인지,그의 뇌리에 머물고 있는 의식불명인 아내의 모습 때문인지,이미지라는 여인에게 마음이 끌려서인지,혹은 단순한 취기 때문인지 진성호로서도 자신의 행동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모든 이유가 합해졌기 때문일 거라고 진성호는 생각했다.

왠지 모르지만 진성호는 그때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고,또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전화를 기다린다고 하셨죠?"

이미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맞아요.지금쯤이면 결론이 날 때도 됐을텐데…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내가 전화를 해봐야겠어요"

진성호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한참 후 여보세요하고 금방 잠에서 깬 듯한 황무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아 회장님,해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아침 6시경이면 좀더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황무석의 혀꼬부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어디에 계세요?"

"차 안입니다.그자와 헤어져 집에 들어가는 중입니다.아침 6시경에 그자와 통화하기로 했지요"

"그럼 전화 기다릴게요.너무 고생이 많았어요"

"괜찮습니다.좀 과음을 해서…"

"그럼 6시경에 결과를 핸드폰으로 알려주세요"

진성호가 전화를 끊었다.

"일이 잘 해결되었어요?"

이미지가 물었다.

"잘될 것 같아요.아침 6시경에 확실히 알 수 있다는군요.그때까지 나하고 같이 있어줄 수 있어요?"

이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2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해요"

진성호가 말했다.

"제가 노래를 할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요"

이미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의 촛불 한 자루를 가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촛불을 피아노 위에 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녀가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서곡이 ''에비타'' 중 Don''t cry for me,Argentina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예와 권력을 얻었지만,결국 그것이 허무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

때로는 한 손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다른 손으로 모션을 취하면서 그녀는 노래에 흠뻑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