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공항에 내린 SL시스템즈 박인수(43) 사장의 가슴은 뛰었다.

몇 달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하고 중국진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대륙에 대한 호기심도 잠깐.그는 곧바로 중국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 있는 롄샹(聯想)으로 향했다.

PC업체인 롄샹은 얼마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문했을 만큼 대표적인 중국 기업.

박 사장은 롄샹 마케팅 담당 부총리 등을 만나 작은 회의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롄샹의 포털 사이트(www.FM365.com)에 SL의 인터넷 무료전화 서비스 ''텔레프리''를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처음 롄샹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국 인터넷 솔루션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의자 뒤로 몸을 눕힌 한 롄샹 실무자는 시장가치가 회의적이라는 듯 건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인 박 사장은 텔레프리의 시장가치와 파급 효과를 침착하게 설명해갔다.

그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숭숭 맺혔다.

드디어 무료전화를 실제로 시연해보이는 순간.남은 콘센트가 없어 에어컨 플러그를 빼고 노트북을 작동시켰다.

좁은 회의실 안의 온도는 더욱 올라갔고 웃옷도 벗지 못한 박 사장의 얼굴엔 땀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드디어 롄샹측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접 보더니 약간 감명받은 표정이었다.

뒤로 기울어졌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좀 전과 달리 훨씬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당장 합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계속 협의키로 했다.

첫 접촉으로는 만족할 만한 성공이었다.

탈진할 정도로 지친 박 사장은 끼니도 거른 채 다시 중국 최대의 인터넷 경매업체 이치넷(www.eachnet.com)으로 향했다.

창 밖으로 다시 보이는 중관춘의 모습이 그렇게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활기차고 인상적일 수 없었다.

숟가락을 먼저 올리듯 선점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한국 벤처기업들에게 중국진출이 결코 만만찮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 쉽지는 않겠지만 역시 중국은 한국 벤처들이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절대 놓칠 수 없는 엄청난 시장이라는 것도 함께….

베이징=서욱진 벤처중기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