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민주 양당, 전격 합당 선언."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인터넷판에 이런 기사를 실었다.

올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두 당이 합당하고,조만간 공화당의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양당이 전격 합당키로 한 이유는 "공화.민주 양당의 정강정책이 워낙 비슷해 굳이 정치적으로 양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타임지는 밝혔다.

이 기사는 양당간에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정책 베끼기''를 풍자하기 위한 ''의도된 오보''였다.

타임지의 풍자가 아니더라도 양당은 재정 금융 통상 등 과거 보수·진보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했던 분야에서도 거의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공화당이 대기업과 고소득자 등 기득권층을 대변해 조세와 예산 지출의 최소화 등 ''작은 정부론''을 내세우면, 민주당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며 세율 인상과 예산 확대 등을 정강정책으로 내걸어 맞서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올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공화당의 부시나 민주당의 고어 후보 진영이 세율문제를 놓고 일부 맞서는 것을 제외하면 다같이 정부 역할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통상분야에서는 공화당이 민주당 정책을 벤치마킹해 주요 무역상대국들의 시장개방 확대 등 공격적인 통상노선을 다짐하고 있다.

미국의 제3당을 표방하고 있는 개혁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선 시민운동가 출신의 랠프 네이더는 이런 공화·민주 양당 주자의 ''서로 베끼기''현상을 꼬집어 "미국 정치권은 부시와 고어의 합작 독점(duopoly) 아래 놓여 있다"고 힐난할 정도다.

그러나 공화·민주 양당 대선주자들의 ''정책 베끼기''는 이번 선거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현 민주당 행정부가 이미 상당부분 공화당의 전통적인 정책노선을 흡수하며 경제 난제들을 해결해 왔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정 감축 노선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경제의 고질적 난제 중 하나였던 만성적 연방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재정 감축을 선언하고는 실천에 옮겼다.

특히 실직자들에게 제공해 온 실업 연금 지급을 중단하고 대신 일정기간 동안 직능교육을 실시,자립을 유도한다는 ''워크페어(Welfare to Workfare)''정책은 전통적인 민주당 노선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결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클린턴이 공화당 정책의 핵심을 훔쳤다"(리처드 파이어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얘기까지 들었다.

이처럼 양당의 정책 퓨전, 보다 정확히 말해 ''민주당의 공화당 정책 베끼기''가 노골화되고 있는 이유는 뻔하다.

"시장경제에 충실한 정책이야말로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미국경제를 승자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음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실증됐기 때문(로렌스 코브 외교협의회 연구위원)"이다.

이와 관련,최근 워싱턴 정가를 달구었던 공화·민주 양당간의 ''신경제 원조(原祖)''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미국경제가 구가하고 있는 사상 최장기 호황의 뿌리를 놓고 민주당측은 현 정부의 재정 균형정책(클린터노믹스)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공화당측은 80년대 감세와 규제완화를 단행한 레이건 행정부의 공급중시 정책(레이거노믹스) 때문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양당이 내세우는 ''공적''은 포장만 다를 뿐 ''정부개입 최소화와 시장역할 극대화''라는 동일한 내용물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을 키워드로 한 두당의 정책 퓨전이 미국경제의 경쟁력을 탄탄하게 뒷받침해 왔다는 얘기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