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연환계"를 동원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유비에게 맞설 때 구사했던 전법이다.

배를 모두 한줄로 엮어 강력한 요새를 구축,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이다.

의료계는 병원의 전공의와 전임의가 파업중인 데 이어 동네의원들까지 11일부터 "집단 재폐업"에 돌입토록 해 사실상 의료행위 중단을 선언했다.

모든 의료기관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 "대전"을 치르겠다는 각오다.

마침 주무장관이 바뀌었고 대통령이 "이번 주 안에 의약분업 마찰을 해결하라"고 지시했으니 총동원령을 내릴 적기로 판단한 듯 하다.

정부당국은 수세일 수 밖에 없다.

이번 주 안에 해결하려면 어지간한 것은 다 내주어야 할 판이다.

내용은 차치하고 어떻게 하든 병원문을 열게 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

바로 이 대목이 적벽대전에서와 바뀐 상황이다.

적벽전 당시 조조의 연환계를 파악한 유비 진영의 제갈량은 엉뚱하게도 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냈다.

동남풍을 불러오는 주술이었다.

적진 쪽으로 바람이 불면 화공을 구사하려는 계략이었다.

곧 동남풍이 분다는 것을 알아차린 제갈량은 산에 올라가 짐짓 제사를 지냄으로써 "신통력"을 과시했다.

서울에서의 장면은 사뭇 다르다.

사태 확산을 막으려는 노련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주 안에 끝내라''며 스스로 발목을 잡아 버렸다.

결굴 의료계만 더 자극하고 말았다.

시한을 정해 몰아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

아둔한 당국 때문에 환자들만 억울하게 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미 불기 시작한 동남풍을 무시해선 안된다.

악화될대로 악화된 여론은 "더이상의 의료공백은 안된다"며 아우성치고 있다.

파업의 와중에 환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의료공백이 현실화 되면 그 뒤의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하다.

그땐 동남풍이 아니라 태풍을 타고 화공이 몰아칠 것이다.

이젠 한발 물러설 순간이다.

의사로써의 권위와 신뢰를 유지하면서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마지노선이 바로 지금이다.

어느 한쪽도 적벽전에서 처럼 불속으로 사라져가는 파국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도경 사회부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