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파크텔에 투숙한 남측 이산가족들은 설레는 가슴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 뒤에도 삼삼오오 모여 서로 얘기를 나누며 애환을 같이했다.

첫딸 김옥배(67)씨를 만나는 데 50년의 세월이 걸린 88세의 노모 홍길순씨.

옥배씨는 북한 예술계 박사 1호 출신으로 현재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홍 할머니는 전쟁 당시 창덕고녀에 다니며 무용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던 첫딸의 17세때 모습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명동 상업은행 옆에 살았던 홍 할머니 가족은 옥배씨가 무용연습을 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후 영영 소식이 끊겼다고 50년전을 회고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나온 동생 숙배(여·64) 영배(여·62)씨는 "사망신고까지 마친 언니를 살아서 만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의 유명한 국어학자 류렬(82)씨를 만나게 될 딸 인자(59·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씨는 헤어질 당시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던 아버지의 부드러운 손길이 아슴프레 기억난다고 말했다.

인자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이 쓴 글을 다듬어주고 ''잘썼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인자한 모습을 떠올리며 감회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함께 살다 1·4후퇴때 외삼촌을 따라 홀로 피란했던 게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북한에서 계관시인 칭호를 받는 오영재(64)씨도 이번 상봉단 일원으로 내려와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동생인 형재(62·서울시립대 전산통계학과 교수)씨는 "형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마냥 불렀다는 ''따오기''를 서울에서 형제들끼리 실컷 불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재씨 못지않게 남쪽 형제들도 모두 학문의 길에 들어서 성공한 학자들이 됐다.

장남인 승재(67)씨는 한남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고 영재씨의 동생인 근재(59)씨는 홍익대 조형대학장이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