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가족 상봉] (평양에서) 격정에 못이겨 탈진 등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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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첫 광복절인 15일 남북한 이산가족이 하나가 됐다.
이산가족이 단체로 상봉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12번 컨벤션홀과 평양의 고려호텔에는 기쁨의 울음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50년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이뤄진 만남 만큼이나 이들의 사연은 애절해 눈물없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생이별의 아픔을 참아온 부모 형제들은 ''이제 헤어지지 말자''며 꼭잡은 두손을 놓지 못했다.
분단의 한반도가 이날은 하나가 돼 ''울음바다''가 돼버린 날이었다.
"오마니! 그동안 편안히 살아 계셨습네까?"
15일 오후 5시5분 남측 방문단의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이뤄진 남측 방문단의 집체(단체)상봉.
50년만에 손을 맞잡은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반세기동안 억눌렀던 그리움을 폭발하는 울음과 함께 일시에 쏟아냈다.
<>.장정희(62)씨는 고려호텔에 도착해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죽은 줄만 알았던 막내 남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장씨는 생사확인 과정에서는 여동생 2명만 살아 있다고 했었는데 남동생이 살아 있고 더욱이 단체상봉에서 만나보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피력.
장씨는 헤어질 당시 생후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동생 창모씨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외우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백9세의 노모가 생존해 계신줄 알았다가 방북 직전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던 장이윤(71)씨는 두 조카를 통해서 믿어지지 않던 어머님의 사망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회환의 통곡을 터뜨렸다.
<>.방북전부터 극적인 사연으로 관심을 모은 이선행(81) 이송자(82)씨 부부의 가족상봉은 뜻밖으로 차분했다.
이씨 부부는 둘 다 북측에서 결혼한 뒤 월남, 남쪽에서 재혼한 실향민 부부.
이선행씨는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라며 북쪽 아내 홍경옥(76)씨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피난길 대동강가에서 헤어졌던 스물여섯 꽃다운 아내는 주름이 깊이 패인 할머니가 돼있었던 것.
이씨는 홍씨 오빠의 이름을 듣고서야 아내임을 확인, 홍씨의 어깨를 감쌌다.
이씨는 "혼자서 애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 많았소"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홍씨를 위로했다.
요즘들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홍씨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도 말라버린 듯했다.
이씨 가족과 5m쯤 떨어진 곳에서는 이씨의 남쪽부인 이송자씨가 북쪽의 큰아들 박의식(61)씨를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월남한 남편을 찾아 월남했다가 남편을 찾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됐다.
이씨는 세명의 손자까지 둔 아들의 손을 잡고 회한의 눈물만 흘렸다.
관심을 모았던 남측의 이씨 부부와 이씨의 북측 아내 홍씨와의 만남은 이날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내일 개별상봉때에는 각자의 가족을 서로 인사시키겠다"며 "다같은 형제요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개성출신 이윤용(82)씨는 처남 김홍규(63)씨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 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김씨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니 정말 기쁘다"고 감격했다.
<>.너무도 울어 눈물도 말라버렸다던 박관선(69)씨는 누님 우선(77)씨와 아들 상직(51)씨를 보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취로사업과 시에서 지급하는 경로연금 교통비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박씨는 변변한 선물하나 준비할 수 없는 처지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평생에 한번 뿐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방북대열에 기꺼이 나섰다고 회한 섞인 한마디를 토로.
한편 북에 두고 왔던 박씨의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 양영애(70)씨는 남동생 후열씨를 만나자마자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느냐. 평생 너를 가슴에 묻고 한을 안은채 돌아가셨다"며 오열하다 땅바닥에 쓰려져 주위를 일순간 긴장케 했다.
그러나 양씨는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동생과 못다한 회한의 정을 나눴다.
<>.70세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인 남측 이산가족들의 건강을 돌보느라 지원요원들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
방북 첫날 가족들을 만난 충격 때문에 혈압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탈진 증세를 보이는 이산가족들이 속출하고 있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 평양=공동취재단 >
[ 이산가족상봉 특별취재팀 ]
<> 팀장 박영배(정치부장.부국장대우)
<> 정치부 = 서화동 김병일 정태웅 김남국 김미리 김현석 기자
<> 사회부 = 강창동 장유택 김문권 이건호 양준영 유영석 정대인 기자
<> 경제부 = 박해영 기자
<> 문화레저부 = 강동균 기자
<> 국제부 = 고성연 기자
<> 영상정보부 = 정동헌 김영우 신경훈 김병언 강은구 허문찬 기자
이산가족이 단체로 상봉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12번 컨벤션홀과 평양의 고려호텔에는 기쁨의 울음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50년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이뤄진 만남 만큼이나 이들의 사연은 애절해 눈물없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생이별의 아픔을 참아온 부모 형제들은 ''이제 헤어지지 말자''며 꼭잡은 두손을 놓지 못했다.
분단의 한반도가 이날은 하나가 돼 ''울음바다''가 돼버린 날이었다.
"오마니! 그동안 편안히 살아 계셨습네까?"
15일 오후 5시5분 남측 방문단의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이뤄진 남측 방문단의 집체(단체)상봉.
50년만에 손을 맞잡은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반세기동안 억눌렀던 그리움을 폭발하는 울음과 함께 일시에 쏟아냈다.
<>.장정희(62)씨는 고려호텔에 도착해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죽은 줄만 알았던 막내 남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장씨는 생사확인 과정에서는 여동생 2명만 살아 있다고 했었는데 남동생이 살아 있고 더욱이 단체상봉에서 만나보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피력.
장씨는 헤어질 당시 생후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동생 창모씨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외우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백9세의 노모가 생존해 계신줄 알았다가 방북 직전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던 장이윤(71)씨는 두 조카를 통해서 믿어지지 않던 어머님의 사망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회환의 통곡을 터뜨렸다.
<>.방북전부터 극적인 사연으로 관심을 모은 이선행(81) 이송자(82)씨 부부의 가족상봉은 뜻밖으로 차분했다.
이씨 부부는 둘 다 북측에서 결혼한 뒤 월남, 남쪽에서 재혼한 실향민 부부.
이선행씨는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라며 북쪽 아내 홍경옥(76)씨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피난길 대동강가에서 헤어졌던 스물여섯 꽃다운 아내는 주름이 깊이 패인 할머니가 돼있었던 것.
이씨는 홍씨 오빠의 이름을 듣고서야 아내임을 확인, 홍씨의 어깨를 감쌌다.
이씨는 "혼자서 애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 많았소"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홍씨를 위로했다.
요즘들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홍씨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도 말라버린 듯했다.
이씨 가족과 5m쯤 떨어진 곳에서는 이씨의 남쪽부인 이송자씨가 북쪽의 큰아들 박의식(61)씨를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월남한 남편을 찾아 월남했다가 남편을 찾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됐다.
이씨는 세명의 손자까지 둔 아들의 손을 잡고 회한의 눈물만 흘렸다.
관심을 모았던 남측의 이씨 부부와 이씨의 북측 아내 홍씨와의 만남은 이날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내일 개별상봉때에는 각자의 가족을 서로 인사시키겠다"며 "다같은 형제요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개성출신 이윤용(82)씨는 처남 김홍규(63)씨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 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김씨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니 정말 기쁘다"고 감격했다.
<>.너무도 울어 눈물도 말라버렸다던 박관선(69)씨는 누님 우선(77)씨와 아들 상직(51)씨를 보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취로사업과 시에서 지급하는 경로연금 교통비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박씨는 변변한 선물하나 준비할 수 없는 처지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평생에 한번 뿐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방북대열에 기꺼이 나섰다고 회한 섞인 한마디를 토로.
한편 북에 두고 왔던 박씨의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 양영애(70)씨는 남동생 후열씨를 만나자마자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느냐. 평생 너를 가슴에 묻고 한을 안은채 돌아가셨다"며 오열하다 땅바닥에 쓰려져 주위를 일순간 긴장케 했다.
그러나 양씨는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동생과 못다한 회한의 정을 나눴다.
<>.70세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인 남측 이산가족들의 건강을 돌보느라 지원요원들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
방북 첫날 가족들을 만난 충격 때문에 혈압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탈진 증세를 보이는 이산가족들이 속출하고 있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 평양=공동취재단 >
[ 이산가족상봉 특별취재팀 ]
<> 팀장 박영배(정치부장.부국장대우)
<> 정치부 = 서화동 김병일 정태웅 김남국 김미리 김현석 기자
<> 사회부 = 강창동 장유택 김문권 이건호 양준영 유영석 정대인 기자
<> 경제부 = 박해영 기자
<> 문화레저부 = 강동균 기자
<> 국제부 = 고성연 기자
<> 영상정보부 = 정동헌 김영우 신경훈 김병언 강은구 허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