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안타까운 사연들]..."조금만 더 사셨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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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형 문병칠(68)씨를 만난 병호(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씨는 15일 오후 상봉장에서 형을 보자마자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형님,어머니를 잘 모시지못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다.
너희들이라도 이렇게 건강히 살아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달 19일 북에 있는 병칠씨의 생존소식을 전해 들은후 와병중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어머니 황봉순(90)씨는 사흘만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토록 목빠지게 기다리던 만남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형제는 부둥켜 울었다.
병호씨는 "어머니께서 형이 살아온다는 말을 듣고 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는데 갑자기 형 이름을 부르신 뒤 숨을 거두었다"고 울먹였다.
여동생 정자(59)씨도 "오빠가 죽은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며 "어머니가 한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병칠씨는 "여건이 된다면 어머니 위패를 모셔놓고 너희들과 함께 제사라도 지내 이승에서 못다한 모자의 한을 풀었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고 말했다.
이틀이란 운명의 시간이 형제를 영원히 갈라놓은 슬픈 사연도 전해졌다.
6·25 전쟁때 헤어진 동생 노창(69)씨와의 상봉을 이틀 앞두고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박원길(89·서울 은평구 신사동)씨의 발인이 치러진 15일 오전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50년전에 헤어진 동생을 마중나갈 채비를 하는 대신 차디찬 관속에 누운 고인 주변에는 부인 배복례(86)씨,아들 박문규(64)씨 가족,친지 등 50여명이 모여 천추의 한을 품고 저 세상으로 떠난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부인 배씨는 남편의 영정 앞에 힘없이 주저앉은채 끝내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의 처지를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영정이 운구차에 실려 장지로 옮겨갈 즈음 배씨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만 더 참았더라면 평생 한을 저미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을것 아니오"라며 영정을 어루만지는 모습에 조문객들도 함께 흐느꼈다.
원길씨의 가족들은 노창씨가 서울에 도착한 뒤 고인의 빈소에 조문할 수 있도록 이날 오후 늦게까지 발인을 늦출 계획이었으나 빈소방문을 확답할 수 없다는 정부측 입장을 통보받고 이날 오전에 발인을 치렀다.
아들 문규씨는 "작은 아버지께서 선친의 빈소에 들러 고인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여의치않아 발인을 치렀다"며 "단체 상봉장에는 사촌 2명과 셋째 숙모가 나가 막내 숙부를 맞았다"고 말했다.
북측에 생존해있는 것으로 발표됐다가 뒤늦은 노모의 사망소식에 절망했던 장이윤(72·부산시 중구 영주동)씨는 이날 오후 평양 고려호텔 상봉장에서 조카 등 친족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한번 오열했다.
장씨는 이날 오전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내 눈으로 어머니 사망을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며 반신반의 했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
"형님,어머니를 잘 모시지못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다.
너희들이라도 이렇게 건강히 살아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달 19일 북에 있는 병칠씨의 생존소식을 전해 들은후 와병중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어머니 황봉순(90)씨는 사흘만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토록 목빠지게 기다리던 만남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형제는 부둥켜 울었다.
병호씨는 "어머니께서 형이 살아온다는 말을 듣고 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는데 갑자기 형 이름을 부르신 뒤 숨을 거두었다"고 울먹였다.
여동생 정자(59)씨도 "오빠가 죽은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며 "어머니가 한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병칠씨는 "여건이 된다면 어머니 위패를 모셔놓고 너희들과 함께 제사라도 지내 이승에서 못다한 모자의 한을 풀었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고 말했다.
이틀이란 운명의 시간이 형제를 영원히 갈라놓은 슬픈 사연도 전해졌다.
6·25 전쟁때 헤어진 동생 노창(69)씨와의 상봉을 이틀 앞두고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박원길(89·서울 은평구 신사동)씨의 발인이 치러진 15일 오전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50년전에 헤어진 동생을 마중나갈 채비를 하는 대신 차디찬 관속에 누운 고인 주변에는 부인 배복례(86)씨,아들 박문규(64)씨 가족,친지 등 50여명이 모여 천추의 한을 품고 저 세상으로 떠난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부인 배씨는 남편의 영정 앞에 힘없이 주저앉은채 끝내 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의 처지를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영정이 운구차에 실려 장지로 옮겨갈 즈음 배씨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만 더 참았더라면 평생 한을 저미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을것 아니오"라며 영정을 어루만지는 모습에 조문객들도 함께 흐느꼈다.
원길씨의 가족들은 노창씨가 서울에 도착한 뒤 고인의 빈소에 조문할 수 있도록 이날 오후 늦게까지 발인을 늦출 계획이었으나 빈소방문을 확답할 수 없다는 정부측 입장을 통보받고 이날 오전에 발인을 치렀다.
아들 문규씨는 "작은 아버지께서 선친의 빈소에 들러 고인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여의치않아 발인을 치렀다"며 "단체 상봉장에는 사촌 2명과 셋째 숙모가 나가 막내 숙부를 맞았다"고 말했다.
북측에 생존해있는 것으로 발표됐다가 뒤늦은 노모의 사망소식에 절망했던 장이윤(72·부산시 중구 영주동)씨는 이날 오후 평양 고려호텔 상봉장에서 조카 등 친족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한번 오열했다.
장씨는 이날 오전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내 눈으로 어머니 사망을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며 반신반의 했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