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에 갇혀 새벽 2~3시까지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극치의 색깔이 나옵니다. 전시회를 앞둔 요즘은 매일 밤늦게까지 작품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오는 25일부터 9월7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3번째 개인전을 갖는 서승원(59)씨.

그는 홍익대 앞에 있는 4~5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마지막 전시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서씨는 60년대 우리나라 화단에 당시로선 생소한 기하학적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주도한 장본인.

50년대 이후 우리화단을 지배하던 앵포르멜 미술 바람을 잠재우며 새로운 사조를 확산시켜 나갔다.

69년엔 이상욱 유광열 김종학씨 등 원로작가들과 한국판화협회를 창립, 판화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아방가르드협회 결성 등 현대미술운동을 꾸준히 펼치며 국내화단의 흐름을 바꾸어 왔다.

"창작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비록 어렵고 가난하고 외로운 길이지만 결국에는 고고한 가치를 지니게 되지요. 이게 바로 배고프지만 새로움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가 이땅에서 처음 시도한 기하학적 추상풍의 작업들이다.

90년 선화랑 개인전 이후 꾸준히 완성해온 근작들로 모두 40여점이 내걸린다.

이중에는 폭 10m, 높이 2m짜리 초대형 작품도 포함된다.

작품주제는 60년대 이후 줄곧 매달려온 ''동시성''.

시간과 공간의 동시적 공존을 의미하는 말이다.

출품작들은 색채의 다양성을 배제하고 내면의 감성을 전제로 한 단색의 모노톤을 주조로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의 색인 흰색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 위에 원색이 아닌 추출되어진 색, 간추린 색을 덧칠해 형태와 면, 선을 형성하며 기하학적 추상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워낙 색과 색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희미한 색상을 사용해 얼핏 보면 미완성 작품처럼 보인다.

이게 바로 한국적 얼과 정신을 현대적 회화로 표현한다는 서씨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다.

"제 그림은 산사의 종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의 울림을 캔버스에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혼과 얼,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의 작품기법은 독특하다.

우선 캔버스에 흰색을 칠한 후 거칠거칠한 면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그런 다음 색을 여러차례 입히고 지워 두터운 질감을 형성해 간다.

그러면 야릇하고 희미한 색상이 나타나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과정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 작품하나 만드는데 3∼4주씩 걸린다.

서씨는 3백여차례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쳐 왔다.

특히 지난 9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석했으며 상파울루비엔날레(71년) 파리비엔날레(69년) 카뉴국제회화제(77년) 등 유명 국제전에 참가해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또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아 한국현대작가전(63년) 수석상, 한국미술대상전(71년) 최고상, 현대판화 그랑프리전(71년) 대상 등 각종 상을 수상했다.

현재 홍익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기획연구처장이란 보직도 갖고 있다.

(02)734-6111∼3

윤기설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