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을 고르는 사람,횟감을 흥정하는 사람.

휴가철을 맞아 서해안이 붐빈다.

바람에 실려오는 짭조름한 냄새 속에서 장엄한 낙조를 바라보며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인가.

서울 근교 소래포구나 제부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들과 이웃해 있는 공단의 여름풍경은 사뭇 다르다.

반월공단의 이구산업 공장 마당에는 시커먼 전기동과 회색빛 아연괴가 집채처럼 쌓여있다.

공장안으로 들어서면 용광로가 있고 이곳으로부터 열기가 후끈 다가온다.

구리와 아연을 그 속에 집어넣는 이영식(42) 주임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쉴새없이 떨어진다.

섭씨 1천도가 넘게 가열된 금속이 용암처럼 흘러내린다.

종업원 1백여명의 이구산업은 황동코일,인청동코일과 반도체용 리드프레임 소재를 만드는 업체.동남아나 미국에서 이름이 더 나 있다.

품질 때문이다.

황동코일은 전자제품용 커넥터와 주전자 냄비 프라이팬 등 주방기기를 만드는 소재.

겉에 미세한 긁힘이나 기포가 있으면 안 된다.

품질관리의 출발점은 바로 용광로 작업.

고품질 전략은 외환위기 때 진가를 발휘했다.

내수에 의존하던 신동업체 대부분은 시장이 얼어붙자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외국으로부터 금세 주문을 확보할 수 있었다.

98년 6백10만달러,작년에는 7백20만달러어치를 실어냈다.

그 현장은 휴가도 없이 일해온 장기근속사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17년동안 근무한 이 주임을 비롯 16년차 주진용씨,10년차 김승광씨 등.

고졸 학력의 이들은 용광로 곁을 떠나지 않고 1년 3백65일 묵묵히 일한다.

보수하거나 교대근무할 때 하루 이틀 쉬는 게 고작이다.

공단에는 ''위대한 계절'' 여름을 땀과 함께 현장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화공약품 냄새 가득한 도금과 염색공장에서,뜨거운 수증기를 안고 폐지를 재생지로 만드는 제지공장에서….

매미가 운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서늘한 바람이 이들의 목과 뺨을 어루만져 주기를 기대해 보자.

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