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만 보고 한평생을 그리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척추를 다쳐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오빠를 찾아 이를 악물고 평양을 찾았던 김금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또 한번 목놓아 울었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왔던 오빠 어후씨를 만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전날 단체 상봉때 금도(72) 금녀(69)씨 등 두 사촌언니만 만났던 금자씨는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알아보겠다"는 언니들의 말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옛 기억을 더듬느라 밤을 꼬박 새웠을 정도다.

그러나 이날 오전 김씨는 사촌언니들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몸부림쳤다.

금녀씨는 "함흥에 살고있는 딸에게 전화로 물어봤는데 이미 2년전에 고혈압으로 사망했다고 해서 우리도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통곡했다.

"걷지는 못해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반드시 와야할 길"이라며 "오빠를 볼 수 있다면 여기서 쓰러져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던 김씨였다.

금자씨에게 전해진 또 하나의 소식은 더욱 기막혔다.

여동생 금복(65)씨마저 건강이 좋지않아 병상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복씨는 함흥시 사포구역에 살고 있는데 처녀때 다친 허리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한다.

더구나 금복씨는 아이를 갖지 못해 두 남매를 입양해 기른다는 말을 듣고 금자씨는 더욱 착잡해졌다.

북한을 방문한 남측 이산가족중 김희조(73·여·부산 해운대구 반여2동)씨도 끝내 동생 기조(67)씨를 볼 수 없었다.

이미 2년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사촌동생 창규(67)씨로부터 들어야 했다.

희조씨는 "다들 부둥켜안고 기뻐하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착오가 생겼는가"라며 슬픔에 몸을 떨었다.

평북 영변군이 고향인 희조씨는 지난 47년 20세때 시집 식구들을 따라 서울로 이사왔다.

그러나 희조씨 친정 식구들은 고령인 부모를 모시고 있었던 데다 가족이 많아 피란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희조씨는 "부모님은 물론 두 오빠와 네동생들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며 "사촌이라며 찾아온 사람이 조카들의 얼굴과 이름마저 모르고 지낸다는 사실에 그저 기가 막힌다"고 통탄해 했다.

식사조차 거르고 있는 희조씨는 "공연히 북한까지 와 가족이 한명도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만 알게 됐다"며 "분단의 비극이 내 가슴을 두번이나 도려냈다"고 울먹였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